[업그레이드과학교육]학생들이 만들어 가는 수업 아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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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5면

지난 22일 오전 경기도 남양주시 퇴계원중학교 과학실. 3학년 한반 40명이 8개의 큰 탁자에 다섯명씩 조별로 나눠 앉은 가운데 과학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한 학생이 앞으로 나와 대형 모니터에 컴퓨터 학습 자료를 띄워가며 설명을 한다.

"지구에 가까운 별과,그보다 훨씬 밝지만 먼 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구에서는 가까운 별이 밝아보여 사람들은 그 별을 더 좋아했습니다. 먼 별은 억울했습니다. 그래서 별들의 총회를 소집했습니다. 그리고 지구에서 똑같은 거리에 별들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의 밝기를 따지기로 했습니다. 그리해서 별 밝기의 '절대 등급'이 정해졌습니다."

이른바 '겉보기 등급'과 '절대 등급'을 학생이 직접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사용해 설명하는 것. 설명이 끝나자 각 조마다 토론을 해가며 관련된 문제를 푼다. 따분하다는 표정을 짓는 학생은 하나도 없고, 서로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며 문제 풀기에 열중한다.

심재규(33)교사가 담당하는 퇴계원중의 과학 수업은 이렇게 학생들이 주인이다. 교사는 개략적인 설명만 하고,학생들이 힘들어할 때 도움을 주는 정도다. 처음부터 끝까지 교사 혼자 이야기하는 여느 과학 수업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심교사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1998년 처음 퇴계원중에 부임하면서부터 학생들이 만들어가는 식의 수업을 했다. 그는 "교사 생활을 시작하기 전, 선배들로부터 대부분의 학생이 과학 시간을 지루해한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학생들이 적극 참여하는 식으로 수업을 꾸미는 것만이 해결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의 생각은 적중했다. 가끔 수업 방식과 내용에 대해 설문조사를 하는데,이제는 과학 시간이 지루하다는 학생들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수업 방식은 조금 진화를 거쳤다. 수업 말미에 퀴즈를 내 조별로 점수를 매기는 것을 도입했다. 한달에 한번씩 과자 파티를 열어 성적이 제일 좋은 조가 과자와 음료수를 가장 많이 받게 했다.

중간·기말고사를 치른 뒤에는 성적에 따라 조를 다시 짜고, 조별로 성적이 우수한 대표 학생을 '감독'으로 임명했다. 성적이 오른 선수들은 다음 번에 조를 재편성할 때 감독으로 승진할 수도 있다.

심교사는 "자신이 속한 조의 성적이 자기 때문에 나빠졌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는 사명감에 학생들이 수업에 더 열중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퇴계원중은 또 2000년부터 전교생이 참여하는 과학 행사 '탐구 축제'도 매년 한차례씩 열고 있다.

높은 곳에서 달걀을 떨어뜨려도 깨지지 않는 안전장치 개발, 무거운 것도 받치는 수수깡 다리 만들기, 압축 공기를 뿜어내는 대포 등 8가지 종목을 정하고 누가 더 성능이 좋은 것을 고안해냈는지 경연을 벌인다.

경연에는 전교생이 한명도 빠지지 않고 한종목씩에 출전한다. 한 반 40명이 5명씩 한조를 이뤄 각기 한 종목에 나가는 것이다. 탐구축제 웹사이트(tamgu2002.com)에 "고교에 가서도 탐구축제에 출전하고 싶다""공기대포 쏘다가 팔에 멍이 드는 것도 몰랐다"는 내용의 글이 수두룩하게 올라올 정도로 호응이 높다. 올해는 부근의 연세중·덕소중도 같은 행사를 열었다.

심교사는 "'과학은 재미있는 것'이라는 인상을 주는 게 행사의 목표"라며 "이를 통해 과학문화를 가꿔나가는 것이 이공계 기피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초석일 것"이라고 말했다.

권혁주 기자

woong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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