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 벗은 한·일회담] 대책기획단 꾸렸지만 … 답 못 내는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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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협정 문서 공개 이후 정부가 일제시대 징병.징용 피해자에 대한 보상 문제를 놓고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정부는 문서가 공개될 경우 피해자와 유족들의 추가 보상 요구가 빗발칠 것에 대비, 지난해 11월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중심으로 관계부처 합동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논의를 해 왔다.

지난 17일 문서 공개 직후엔 국무조정실 산하에 범정부 차원의 대책기획단도 구성했다. 18일 저녁엔 이해찬 총리와 관계부처 장관, 열린우리당 임채정 의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고위 당정 간담회를 열고 '민.관 공동위원회'를 조속히 설치하기로 했다. 정부는 소송을 맡고, 국회는 사회 지도층 인사들과 함께 여론을 수렴하는 등 협력체제를 구축하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아직까지 뾰족한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데 고민이 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공개 날짜를 신중하게 택할 정도로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했지만 핵심 사안인 보상의 성격과 범위.규모 등에 대해서는 별다른 진전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추가 보상 요구를 정부가 받을지 말지조차 확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 보상 특별법 가능할까=정부는 그동안 추가 보상이 가능한지 집중 검토했다.

결론은 "어렵다"였다. 1975~77년 3개 보상 관련 법률을 제정해 보상 작업을 마무리한 만큼 적어도 법적으로는 추가 보상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유족들의 요구를 마냥 외면할 수도 없는 처지다. 그래서 나온 아이디어가 '추가 보상을 위한 특별법'을 만드는 방안이다. 특별법이라면 법적 문제 없이 70년대 보상에서 누락된 피해자들에게 보상을 해 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난점은 과연 국회가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을 것이냐다. 추가 보상을 하려면 정부의 대략적인 추산으로도 국민의 혈세가 최소 수조원 들어가야 한다. 이 같은 현실에서 과연 국회의원들이 쉽사리 특별법에 찬성표를 던질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정부 당국자들이 "여론의 추이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 "다각적.포괄적 지원"=정부는 특별법 제정이 어려워질 경우의 대안도 마련 중이다. 기본 방침은 ▶여러 방면에서▶포괄적으로▶최대한 성의껏 지원하는 것으로 정했다.

우회 보상책 가운데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방안은 피해자와 유족들에 대한 생계지원. 어렵게 사는 유족들이 적잖은 만큼 당장 생활고부터 해결해줘야 한다는 판단이다. 하지만 직접 현금 지원보다는 일자리를 제공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다. 정부가 보상금을 준다는 논란도 피해갈 수 있고, 유족들을 실질적으로 돕는 방안이란 판단에서다. 피해자 자녀들을 위한 장학사업도 적극 검토되고 있다. 징병.징용 피해자를 위한 다양한 기념사업들도 구상 중이다. 이와 관련, 정부는 현재 일본 땅에 묻혀 있는 징용 피해자들의 유해를 송환하기 위해 조만간 일본 정부와 본격 협상에 나설 방침이다. 그리고 유해가 송환되면 위령제를 비롯해 각종 추모사업을 벌여 유족들의 한을 덜어준다는 방침이다.

정부 관계자는 "징용 피해자와 유족들이 추모사업에 직접 참여하면서 일자리 문제도 자연스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신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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