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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뒤를 겨냥하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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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26일 가족과 휴식을 취하기 위해 설악산을 찾은 국민통합21의 정몽준(얼굴)대표가 자신의 구상을 드러냈다. '2004년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론'이 골자다. 그는 다른 부분은 말을 아꼈지만 이 부분은 똑 부러지게 입장을 밝혔다. 鄭대표의 집념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鄭대표가 민주당 노무현 후보에게 요구했다는 분권형 대통령제 개헌안의 골격은 ▶국무총리의 권력 강화 ▶대통령 4년 중임제 ▶2008년부터 대선과 총선의 동시실시 ▶국회와 내각의 권한 강화 ▶2원집정부제적 권력구조 채택 등이다.

국회의 동의없이 총리를 해임할 수 없고, 대통령(통일·외교·안보)과 총리(경제·치안·복지)가 고유의 영역을 맡아 관련 장관들의 배타적 임명권을 갖는다. 총리의 권한과 위상이 순수 내각제에 못지 않게 막강하다. 鄭대표는 이런 개헌안을 단일화 여론조사를 하기 이틀 전에 집권공약으로 제시했다.

노무현-정몽준 진영간 연대논의가 긴밀하게 진행 중인 상황에서 鄭대표가 盧후보와의 대화내용을 공개한 이유는 뭘까.

鄭대표는 대선 과정과 집권 이후 '노무현 정권'의 성격을 공동정권으로 규정하고, 50% 파트너십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합의문 조항대로 공동 선거대책위원장 자리 하나 맡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판단으로 보인다.

1997년 DJP연대 당시 한자리 지지율 밖에 안됐던 JP도 공동정권에서 DJ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느냐는 게 鄭대표 측의 설명이다. 鄭대표 측의 다른 관계자는 "차기 정부의 책임총리는 2007년 대선의 가장 유력한 주자가 되지 않겠느냐"고 말해 鄭대표의 개헌론이 5년 후까지 염두에 둔 구상임을 내비쳤다.

鄭대표는 대선운동에서 盧후보의 '러닝 메이트'로 전국을 돌면서 盧후보의 지지를 호소할 생각이 있다고 한다. 러닝 메이트 효과를 제대로 내기 위해 鄭대표는 실권이 있는 책임총리를 집권 후에 맡게 되리라는 전망을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 점을 盧후보가 '개헌추진 약속'이란 방식으로 보장해달라는 얘기다. 단일화 효과를 높이기 위해 '정몽준 지지층'의 이탈을 막는 게 급선무인 盧후보 측도 鄭대표의 요구를 외면할 수만은 없을 것으로 통합21은 믿는 모습이다. 鄭대표가 허울뿐인 공동선대위원장으로 머물러 있는 한 반(反)이회창 표의 결집이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 "권력과 자리 나눠먹기 밀실흥정이 개헌론으로 표출됐다"며 공세를 폈다. "단일화가 야합이라는 증거가 드러났다"고도 했다. DJP공동정부의 실패가 '노무현-정몽준 공동정부'에서 재현할 것이라는 논리다.

민주당은 곤혹스럽다. 鄭대표의 요구를 받아주자니 "자리 나누기는 없을 것"이라 했던 盧후보의 기존입장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거부하자니 단일화 효과가 반감될 것이란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중요한 선거운동 파트너를 잃게 될 수도 있다. 이낙연(李洛淵)대변인이 "통합21 측과 개헌논의를 하겠지만, 논의엔 시간이 많이 걸릴 것"이라는 다소 어정쩡한 발표를 한 것에서도 고민을 읽을 수 있다.

전영기 기자

chuny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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