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겨운 정치 코미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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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후보 단일화 이후 민주당 내 분위기가 달라졌다. 썰렁했던 선거대책위 회의는 빈 자리가 없고, 주차장은 모자란다. 지난 몇개월간 당사에 얼씬거리지 않았던 일부 의원은 노무현 후보와 눈 도장을 찍으려 안간힘이라고 한다. 盧후보의 흉을 실컷 본 중진일수록 대선 승리에 앞장서겠다며 충성을 다짐한다는 것이다. 낯 뜨거운 장면들이다. "정치가 이렇게 추잡할 수 있나"하는 개탄이 절로 나오게 한다. 민주당을 탈당했던 후보단일화협의회(후단협)가 양지와 단맛만을 좇는 이런 대선 풍속도의 한복판에 있다.

어제 후단협 의원 중 12명이 민주당으로 집단으로 되돌아갔다. 단일화가 이뤄졌다는 점을 복당 이유로 대고 있으나 "얼굴 두껍고 뻔뻔하다"는 경멸과 냉소가 다수 국민 반응이다. 그동안 이들은 '국민 경선은 사기극''비노(非盧)·반노(反盧) '를 외치면서 4자 연대를 하겠다, 정몽준 후보를 밀겠다는 등 틈만 나면 盧후보를 흔들어댔다. 盧후보를 주저앉히느라 여러 꾀도 냈다. 그런데 盧후보 쪽으로 단일화되자 변절과 배신의 귀재들답게 언제 그랬느냐는 등 딴청을 부리고 있다. "단일화 공로가 우리에게도 있다, 단일화에 정치 생명을 걸었다"는 그들의 주장은 구역질 나는 코미디며, 기회주의 정치의 본색이 드러난 것뿐이다.

같은 후단협 출신 김원길·박상규 의원은 한나라당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은 DJ정권 들어 인사 특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민주당 사무총장에다 장관(보건복지부 장관·중소기업위원장) 등 요직을 차지했다. 한나라당 입당 이유로 "국정 경영능력이 이회창 후보가 낫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배은망덕이란 비난이 자연스러울 정도다. "최고 개혁은 수구 냉전 세력인 李후보의 집권을 막는 것"이라고 했던 金의원의 말바꿈은 염치 없음의 극치다. 후단협 소속 의원들의 어처구니없는 행태를 양당 모두 수용한 것은 세(勢)불리기 경쟁 때문일 것이다. 이는 李·盧후보 모두 강조하는 '원칙의 정치, 깨끗한 대선'과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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