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 내린 공정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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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공정거래위원회의 최고 의결기구에 상정된 재정경제부 관련 안건이 재경부의 전화 한 통으로 철회됐다.

기업 조사에선 원칙을 강조해 온 공정위가 재경부의 요구에 줏대없이 칼을 거둔 것이다. 양측은 "사전 협의가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해명했지만 이번에 철회된 안건은 1년 넘게 두 부처가 논의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한 사안이다.

공정위는 27일 열리는 전원회의에서 재경부 회계 예규의 불공정성을 심의하겠다고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25일 밝혔다. 문제가 된 것은 공공기관 발주 공사를 맡은 건설업체는 공사 과정에서 발생한 채권을 해당 기관의 승인 없이는 팔 수 없도록 한 부분이다. 이 조항은 대부분의 공기업에서 약관으로 준용하고 있다. 공정위는 "건설업체에 지나치게 불리한 내용"이라고 주장했고, 재경부는 "안정적인 공사를 위해 불가피하다"고 맞섰다.

정부 중앙부처가 관련자가 아닌 직접적인 심의 대상으로 공정위 심판정에 서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피심인(被審人)'이 될 처지에 놓인 재경부는 이날 오전 "부처 간 협의로 문제를 풀자"며 안건 철회를 요구했고, 공정위는 결국 이를 받아들였다. 전원회의 상정 안건이 완전 철회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사전협의가 가능하면 전원회의에서 다루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그동안 지방자치단체 등을 심판정에 세워 시정요청을 했던 것과 비교하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양측의 협의도 쉽지 않아 보인다.

공정위는 2000년 8월 공기업 약관 조사 때 이 문제를 발견하고 지난해부터 재경부와 협의를 해왔다. 재경부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7일 열린 소위원회에서도 결론을 내리지 못해 전원회의에 상정된 안건이다.

안건 상정을 철회한 뒤 공정위는 "재경부가 예규를 보완하겠다고 했다"고 밝힌 반면 재경부는 "협의를 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훈 기자

filic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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