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째 100%취업 산업기술대의 비밀은… 이 눈빛!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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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6면

지난 18일 경기 시화공단에 위치한 KPS(코리아프랜트 서비스)사. 미국 유수의 제어밸브 생산업체인 커티스라이트의 한국 법인인 이 공장에선 고리원자력 발전소에 납품할 제어밸브를 테스트하느라 한창이다. 올들어 가장 춥다는 이날, 10여명의 남자 직원들이 분주하게 테스트하며 추위를 잊고 있는 와중에 애띤 얼굴의 한 여성이 밸브를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이명희씨(25·사진(右)). 한국산업기술대학교 기계설계학과 졸업반 학생이다.

"실습 나왔어요. 이번 학기가 시작될 때부터 이곳에 나와 제어밸브 설계와 현장을 익히고 있어요. 학점을 이 회사 사장님이 매기니까 제대로 해야 성적을 잘 받을 수 있어요."

이 말을 받아 류인선 KPS 사장은 "주어진 일을 제대로 하고, 빨리빨리 적응하고 있다"면서 "이미 우리 회사에 취업이 확정돼 있다"고 말했다.

이 곳서 차로 10여분 가량 떨어진 자동차용 볼트·너트 전문생산업체인 태정기공의 공장 한 켠에서도 한 젊은이가 열심히 제품 경도를 테스트하고 있다. 역시 내년 2월 산업기술대를 졸업하면 이 회사에 취직하기로 확정된 최순철씨(24·사진(左))다. 그 곁에선 올 초 이 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과정을 밟아 이 회사에 취직한 조인성(32)씨가 최씨를 가르치고 있다. 이들의 학점도 이 회사 신태수 사장이 매긴다.

"이렇게 학생들이 실습을 하면 학생의 성격이나 능력 등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어요. 학생 입장에서도 실습하면서 내가 과연 다닐 만한 직장인지 미리 알 수 있죠."

辛사장은 '실습 학점'의 장점을 높이 평가한다. 이명희 학생의 말도 똑같다.

"졸업하려면 실습 학점을 8학점 이수해야 하므로 그동안 건설회사 등 여러 곳에서 실습했어요. 그런데 KPS가 제일 마음에 들어 이 회사에 취직하기로 결심했어요."

산업기술대가 이런 '프로젝트 실습학점'으로 취업전선에 새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실습이 아예 대학 교과목이고,학점도 실습 업체의 최고경영자(CEO)가 준다.

대학은 학생들의 현장실습 대가로 회사에 수업료를 낸다. CEO들은 학생들을 눈여겨 보다가 괜찮다고 판단되면 즉석에서 채용하고,심지어 입도선매식으로 장학금까지 내면서 미리 채용하는 경우도 있다.

학생들은 근로조건 등을 파악할 수 있어 좋다. 이런 일석삼조의 실습학점제로 산업기술대는 사상 최악의 취업난으로 불리는 올해도 '취업률 1백%'를 자랑하고 있다. 내년 2월 졸업 예정인 3백52명 전부가 이미 모두 취직 자리를 구했다.1998년에 설립,올초 첫 졸업생이 배출될 때부터 2년 연속 '취업률 1백%'다.

"맞춤형 교육 때문이 가장 클 것입니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 대학은 중소기업에 일류 인재를 제공하는 게 설립 목적이니까 중소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공급하기 위해 교육도 맞춤형으로 하고 있어요."

산업자원부 차관을 지내다 99년 부임한 최홍건 총장의 말이다. 대학 커리큘럼을 짤 때부터 그렇다. 아예 시화공단내 기업 사장들이 커리큘럼을 작성할 때부터 참여한다. 대학교수들과 함께 구성된 협의회에서 기업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미리 수요 조사를 한다. 그런 연후 커리큘럼을 짜고, 실습계획에도 반영한다.

"커리큘럼을 기업이 필요로 하는 공정과 기술과정에 맞게 재구성합니다. 그래야 학생들이 졸업 후에도 막바로 현장에서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입니다."

이 대학 홍보실장인 신현덕 교수는 이렇게 말하면서 학과 신설도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올 초에 게임공학과를 설립했고, 내년부터 e-비즈니스학과와 산업디자인공학과를 신설하기로 한 것도 이 분야 수요가 많다고 판단해서다.

辛사장도 같은 얘기다.

"대학 관계자들을 만날 때면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교육을 해달라고 요구합니다. 대학생들이 와서 실습하는 모습을 지켜보면 이론은 밝지만 기계를 잘 다룰 줄 몰라요. 그랬더니 이후 학생들은 해가 다르게 달라져요."

미국 칼폴리(Cal-Poly)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한 柳사장은 "이게 미국식"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칼폴리대학도 이런 인턴십제도를 적극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취업률 95%를 자랑한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호응이 좋아 대학은 올해부터 실습학점제를 18학점으로 늘렸다. 8학점은 의무지만, 10학점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졸업생 리콜'제도도 신설했다. 졸업생들이 현장에서 일하다가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수리'까지 해준다는 의미다. 대학측은 아예 시화공단의 업체들을 중심으로 한 가족으로 엮었다. '가족회사'제도가 그것이다. 초고속 가공로·3차원 측정장치·나노테크닉공장동 등 최신 장비를 갖추고, 가족회사들이 우선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준다. 기술지도도 해주고, 공동기술 개발도 한다. 세무사나 법무사 등을 가족회사 모임에 합류시켜 기업들의 애로점을 해결해주도록 하고 있고, 2∼3개월에 한번씩 전체 가족회사 모임을 열어 외부인사 강연도 주선한다. 지난 10월엔 현정택 청와대 경제수석이 강연했다.

辛사장은 지난해 학교에 장학금을 내기도 했다. 이 때문에 불과 2년 전에 시작된 가족회사들이 벌써 1천66개사에 이른다. 중소기업에 일류 인재들을 공급한다는 분명한 목적, 이를 위해 국내 최초로 공단 내에 대학 캠퍼스를 세운 산업기술대의 맞춤형 교육·현장실습 중심 교육·인근 기업과의 강한 유대관계 등 새로운 공학교육 실험이 지금까진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평가해도 좋을 듯 싶다.

글=김영욱 전문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young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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