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그룹 웨일 회장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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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미국 최대의 금융회사인 시티그룹의 샌디 웨일(69·사진)회장이 위기에 빠졌다. 3년 전 계열 증권사인 샐러먼 스미스 바니(SSB)의 유명 애널리스트였던 잭 그룹먼에게 AT&T의 투자등급을 올리라고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월 스트리트 저널과 뉴욕타임스 등 미국의 주요 언론은 뉴욕주 검찰의 조사를 근거로 이 의혹을 연일 크게 다루고 있다. 그룹먼은 지난해 1월 13일 동료 직원에게 보낸 e-메일에서 "AT&T 등급을 올려준 것은 웨일 회장을 도와주기 위해서였다"고 쓴 것으로 드러났다.

보도 내용에 따르면 1988년 4월 미국 최대 은행인 시티코프와 대형 보험사였던 트래블러스그룹이 합병하면서 시티의 존 리드 회장과 트래블러스의 샌디 웨일 회장간에 권력투쟁이 벌어졌다. 이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웨일회장은 시티그룹의 이사였던 AT&T의 최고경영자(CEO) 마이클 암스트롱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웨일은 정보통신분야의 최고 애널리스트로 꼽히던 그룹먼에게 AT&T에 대한 투자의견을 올릴 것을 종용했다. AT&T에 대해 대체로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던 그룹먼은 웨일 회장의 말을 듣고 투자등급을 '보유'에서 '강력매수'로 높였다.

뉴욕 검찰은 SSB와 그룹먼에 대해 AT&T의 투자의견을 올려주고 그 대가로 AT&T의 증권발행 업무를 땄다는 의혹을 조사하던 중 이 같은 '거래'를 짐작케 하는 그룹먼의 e-메일을 찾아냈다.

이같은 보도에 웨일은 그룹먼에게 AT&T의 등급을 재검토해 보라고 말했을 뿐이라고 부인했다. 투자자들에게 엉터리 주식을 추천한 혐의를 받아 지난 8월 회사를 떠나 현재 검찰의 조사를 받고 있는 그룹먼도 마찬가지였다. 문제의 e-메일은 동료에게 자신의 사내입지를 과시하기 위해 지어낸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또 다른 '증거'가 두 사람을 괴롭히고 있다. 그룹먼이 투자등급 상향문제로 암스트롱을 만나는 일정 등이 웨일 회장에게 메모로 전달됐다는 것이다. 이런 거래에서 그룹먼도 이득을 챙겼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가 웨일의 부탁을 들어주는 대신 웨일의 도움으로 자신의 쌍둥이 딸을 하버드대 입학보다 어렵다는 맨해튼의 유명 유아원에 넣었다는 것이다. 웨일은 그룹먼이 매우 중요한 직원이어서 도와주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것과 AT&T 등급조정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그래도 뉴욕 검찰은 시티그룹의 자선재단이 2000년 이 유아원에 1백만달러를 기부하기로 약속한 사실을 들어 의혹 어린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뉴욕=심상복 특파원

sims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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