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로 후보선택 세계서 처음있는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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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여론기관의 여론조사에 따라 지지율 20%를 넘는 후보들끼리 단일화에 합의한 것은 헌정 사상 초유일 뿐 아니라 세계 최초의 일이다.

그런 만큼 합의해야 할 사항도 많았다. 핵심은 승자 결정 방식과 설문조사 내용이다.

양측은 "여론조사가 왜곡될 수 있다"며 구체적인 여론조사 방식에 대해선 함구하고 있지만, 프로야구 준(準)플레이오프 식인 '3판2승제'로 합의된 것으로 17일 확인됐다.

3개의 기관이 각각 여론조사를 실시해 두군데 이상의 기관에서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는 후보를 승자로 선정하는 방식이다. 홀수로 선정한 이유는 비기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다.

조사에 참여하는 여론조사기관은 매출액이 큰 순위대로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한 협상관계자가 전했다.

이 방식대로 하면 가령 1개 기관의 조사에서 A후보가 B후보를 5% 정도의 큰 격차로 이기고, B후보는 A후보를 2개 기관조사에서 오차범위 내에서 간신히 이긴 것으로 나타나도 승자는 B후보가 된다. 이미 노무현·정몽준 후보 모두 "오차범위 내의 결과에 대해서도 승복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양측은 한때 지지율 합산 방식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으론 ▶체조·피겨스케이팅 심사방법 ▶5개 여론조사 기관이 약 3천명이나 1천5백명씩 표본을 만들어 각기 조사를 실시하고, 응답을 모두 합산해 순위를 정하는 방식 등의 두 종류였다.

체조·피겨스케이팅식 방법은 5개 기관을 조사한 뒤 최대·최소격차를 보인 여론조사 기관의 결과를 제외하고, 나머지 3개 여론조사 결과의 지지율을 합산해 그 평균을 구하는 것이다. 민주당이 당초 제안했던 방식이라고 한다.

그러나 지지율 합산 방식은 다수의 여론조사기관 조사에서 뒤지더라도 한 군데에서 크게 이기는 것이 유리하다는 점에 맹점이 있어 채택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더해 鄭후보 측이 "조사에 참여했던 기관을 나중에 배제시키는 것도 문제가 있으니 처음부터 세곳으로 하자"고 제의해 '3개 기관 중 2곳 이상의 승리'로 게임의 룰이 결론났다고 한다.

설문 문항도 민감한 문제였다. "누구로 단일화하는 게 바람직하느냐"와 "누구로 단일화해야 이회창 후보에게 이길 수 있다고 보느냐" "누구를 지지하느냐"에 대한 대답이 모두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여론조사 관계자들은 다자(多者)대결 구도에서의 단순 지지도 조사가 비교적 합리적이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이회창-노무현-이한동-권영길-장세동'으로 한번 조사하고, '이회창-정몽준-이한동-권영길-장세동'으로 또 한번 조사해 각각이 얻은 지지율을 비교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 방안은 鄭후보 측이 선호하는 기존 '이회창-정몽준''이회창-노무현'식의 양자대결 구도 조사에 盧후보 측이 선호하는 단순지지도 조사를 가미한 것이기도 하다.

24(일)∼26(화)일 중 실시될 것으로 알려진 여론조사의 정확한 시점도 변수다. 보통 주중이나 오전에 조사를 하면 주부와 자영업자들의 응답률이 크게 올라가고 휴일이나 오후에 조사하면 샐러리맨의 응답률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나라당 지지층이 보다 경쟁력이 낮은 후보를 고르는 역(逆)선택의 가능성은 어떤 방법을 택하더라도 막을 방법이 별로 없다고 한다.

강민석 기자

ms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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