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에 책 권할 때 눈높이를 맞추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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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문화관광부는 '청소년도서 교환권' 배부 사업을 발표했다. 요점은 전국 9개도의 중1 학생들에게 5천원권의 도서교환권을 무상으로 배부하겠다는 것. 이는 중1 스스로 읽고 싶은 책을 직접 골라 읽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평생 책읽기 습관을 길러 주겠다는 데 그 뜻이 있단다.

아니 그렇게 훌륭한 정책을! 놀라지는 마시라. 곧 한숨으로 바뀔 테니까! 그것도 이순신 장군께서 쏟아내셨던 한숨 만큼이나 길게 길게…. 일단 도서교환권으로 살 수 있는 책들을 문화관광부가 함께 발표한 '청소년 추천도서' 목록으로 한정하여 자가당착의 오류에 빠졌다. 이쯤은 청소년들을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눈감아 주자. 정작 심각한 문제는 '청소년 추천도서' 목록 그 자체에 도사리고 있다! 무엇보다도 도저히 수긍하기 어려운 책들이 이번 추천도서 목록에 버젓이 끼여 있다. 『카네기 처세술』과 『백만장자 이력서』 등의 책들이 바로 그런 예들. 중1부터 처세술 관련서를 읽어라? 그래서 백만장자가 되어라??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전반적으로 이들 목록이 중1생들의 눈높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인훈의 『광장』과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어야 보편적 수준의 중1이란 말인가. '이 정도는 읽어야지', '나는 이 정도로 읽었어' 식의 일방적인 권장은 오히려 독서 의욕을 떨어뜨리는 심각한 후유증을 낳을 수 있다.

이런 식의 목록이니 지금 현장에서는 도서교환권을 중1에게 배부하지 말고 그대로 학교도서관 장서로 채우자는 움직임마저 있게 된다. 일면 다행스럽지만 이런 조치 역시 왜곡을 정당화하는 편법으로 쓰일까 아쉽고 두렵다. 그런가하면 한편으로 이들 목록이 도대체 어떤 영향을 미칠까 세심하게 따져 보며 다시 보완하려는 노력도 따른다.

책을 권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특히 청소년들에게 도서를 선정할 때는 교육 목표와 발달 단계, 교수 방법 등 예술의 경지에 이를 정도로 미묘하고 섬세한 작업을 필요로 한다.

끝으로 현장의 선생님들이 얼마나 혼신의 힘을 다해 노력하는지 확인해 보자(경기 양일종합고 이수정 선생님의 글에서, "나에게 오라, 너에게 이 책을 권하마!!-2학년 4반 아이들에게", 학생들 모두에게 일일이 책을 권한 이 글의 전문은 www.readread.co.kr 자료실에 있음).

"긴 머리가 썩 잘 어울리는 윤미는 작년에 꽤 어려운 책을 소화해낸 경력이 있으니 이번엔 『새로운 종의 여자, 메타우먼』(김진애, 김영사)이라는 책으로 강한 여성으로의 면모도 만들기 바란다. 문학적인 세계를 동경하는 동만이에게는 『양철 지붕 위에 사는 새』(김한수, 문학동네)를, 멋진 미래를 만들어낼 것 같은 나리에게는 『꽃이 피는 그 산 아래 나는 서 있네』(오정희 외, 좋은생각)를, 매우 침착해 웬만해선 흥분 안하는 은경이에게는 『어느 안티 미스코리아의 반란』(고은광순, 인물과사상사)을…."

<'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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