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있는아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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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나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난다면

저 맹인안내견으로 한생 살다가

죽어서

그 다음엔

다시 이 세상에 안 와졌으면

했다

주인을 끌고 다니느라 지쳐

다리가 아파

전철 바닥에 엎드려 있는

나를 쳐다보다 그만 외면하고 마는

선하디선한 맹인안내견

-고형렬(1954∼)'맹인안내견과 함께' 부분

횡단보도나 육교를 통해 길을 건너가는 개를 본 적이 있다. 아무 데서나 도로를 무단횡단하는 사람보다 낫지 않은가. 차들이 질주하는 도로에서 치여죽은 개를 보면, 무단가출한 아이들 생각이 나기도 한다. 앞 못보는 주인을 이끌고 다니는 맹인안내견은 도시의 삶에 지친 사람의 마음도 한동안 끌고 간다.

김광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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