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타 사망후 구속영장청구 '뚝' 검찰 수사 힘 빠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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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서울지검 강력부에서 조사받던 피의자가 지난달 26일 구타로 사망한 이후 검찰이 직접 청구하는 구속영장이 크게 줄어드는 등 검찰 수사력이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특히 특수·강력·마약 등 인지(認知) 수사 부서의 영장 청구가 피의자 사망 사건 이후 눈에 띄게 줄어들면서 검찰의 인지 수사 기능이 사실상 마비된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13일 서울지검에 따르면 이달 1∼10일 검찰이 직접 청구한 구속영장(직수영장)은 32건에 불과했다. 이는 이번 사건이 터지기 전인 지난달 1∼10일의 62건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감소한 것이다.

서울지검 직수영장의 80% 이상이 특수부·강력부·마약부 등에서 나왔으나 이 기간에는 대부분 형사부의 고소·고발 사건에 대한 구속영장이었다. 특히 같은 기간 강력부에서는 단 한건의 구속영장 청구도 없었다. 반면 서울의 지방경찰청과 경찰서에서는 이달 들어 하루 13∼42건씩 영장을 신청했다.

서울지검의 한 검사는 "피의자 사망사건 이후 조직폭력배는 말할 것도 없고 형사사건의 피의자들도 뻔한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수사관이 고성이라도 내면 가혹행위를 한다며 오히려 맞고함을 친다"고 허탈한 표정으로 말했다.

또 다른 검사는 "검사들과 수사관들의 사기가 많이 떨어졌다. 조폭이나 마약 같은 강력범죄 피의자들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너도나도 몸조심을 하니 수사가 제대로 안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 부장 검사는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이 전격 교체되면서 부장들은 이·취임식 참석에 바쁘고 일선 검사들은 수사의지를 상실하다 보니 구속영장 청구율도 떨어졌다"고 말했다.

서울지검의 한 간부는 "피의자의 인권 옹호를 포기할 수는 없다. 검찰 수뇌부에서 잘못된 수사관행에 대해선 하루 빨리 법적·제도적 개선책을 마련해 수사 검사들에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종구 전 법무부장관은 "검찰의 수사력 위축은 당분간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마약이나 강력사건은 경찰에 넘겨 지휘하고, 검찰은 공직자 비리나 화이트칼라 범죄 등으로 수사 대상을 바꾸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실련 사무총장을 지낸 이석연 변호사는 "검찰의 현상황은 그동안 자백 위주의 수사를 해왔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며 "이 사건을 계기로 자백 편중 수사를 지양하고 과학적인 수사로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검찰의 과학적 수사를 위해서는 인력과 장비·예산 등을 뒷받침해 현장·초동수사 과정에서 과학적인 증거채집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정훈 기자

cc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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