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줄보다 능력" :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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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7면

웅진그룹 윤석금(尹錫金·57·사진)회장의 형제자매는 아홉명이다. 처남·처제가 세명이다. 이들이 자녀를 둘씩만 둔다 쳐도 3촌 이내의 가족만 40명이 넘는다.

그러나 웅진의 8개 계열사를 통틀어 회사에 몸담고 있는 형제는 웅진코웨이개발 디자인팀 과장인 막내 여동생 한명뿐이다. 8촌으로 범위를 넓혀도 회계법인에서 근무하다 최근 그룹 경영기획실 차장으로 자리를 옮긴 6촌 동생이 유일하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판매사원으로 일하며 사람을 접촉할 때 친인척 경영의 폐해를 많이 봤습니다. 22년 전 서른다섯의 나이에 헤임인터내셔날이란 출판회사를 만들 때 친인척의 경영 참여를 최대한 배제한다는 원칙을 세웠고 그것을 꾸준히 지켜오고 있죠."

이같은 원칙에 대해 尹회장은 "웅진이란 회사는 나의 회사가 아니라 우리 직원 모두의 회사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유능한 직원을 발탁하고 무능한 이들은 마땅히 해임해야 회사가 발전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무능한 친인척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 그 조직의 신뢰성과 공정성은 땅에 떨어질 수밖에 없고 결국 회사는 몰락의 길을 걸을 겁니다."

尹회장의 경영철학을 증명이라도 하듯 외환위기 이후 쓰러진 중견기업들 중 상당수가 친인척들의 전횡이 직간접 원인이 됐다.

그러나 웅진은 외환위기가 오히려 약이 됐다. 1997년 5천4백여억원에 달했던 웅진그룹의 매출은 외환위기가 닥친 98년 5천1백여억원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웅진은 화장품업계 매출 2위였던 코리아나화장품을 팔고 14개 계열사를 7개로 통폐합하는 등 구조조정을 세게 했다.

그 결과 웅진의 지난해 매출액은 1조4천여억원에 이르렀고 올해엔 2조원 돌파를 목표로 하고 있다.

尹회장은 "그동안 인사관리나 납품업체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친인척이라는 이유로 특혜를 준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고 자부한다"며 "나의 경영방식을 직원들이 신뢰했기 때문에 힘들었던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능력있는 친인척의 경영 참여까지 원천봉쇄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사회 초년병이 웅진으로 곧바로 입사하는 것은 안된다.

그는 "다른 회사에서 능력을 검증받은 친인척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경영지원실에 근무하는 6촌 동생의 경우 尹회장이 세번이나 웅진으로 옮길 것을 제의했을 정도다. 그러나 그는 "최고경영자가 될 가능성이 보이지 않으면 유능한 친인척이라도 승진에 한계를 둘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친인척의 입사나 납품 청탁에 대해 尹회장의 생각이 완고하다보니 친인척들에게서 욕먹는 경우도 많다.

"고향(충남 공주)에 가면 동네분들이 입사지원서를 여러 통 건네기도 하지만 한번도 부탁을 들어주지 못했죠. 또 납품 부탁이 올 때마다 거절하다보니 본의 아니게 나쁜 사람 취급을 받기 일쑤입니다."

친인척 관리에 있어 尹회장이 거리낄 게 없는 만큼 웅진에서는 유난히 발탁 인사가 많다. 웅진식품 조운호(40)사장은 37세였던 99년 3월 부장에서 곧바로 대표이사로 승진했다.

趙사장은 이후 아침햇살·초록매실 등 히트제품을 잇따라 출시하면서 98년 4백억원에 불과했던 웅진식품의 매출은 지난해 2천7백억원으로 급성장했다.

98년 감사실장에서 사장으로 발탁된 웅진코웨이개발 박용선(45)사장은 정수기 등의 렌털사업을 국내 최초로 도입해 웅진이 정수기·공기청정기 시장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올해 3월엔 웅진그룹의 모기업이자 尹회장이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있는 웅진닷컴의 대표이사에 학생운동권 출신인 김준희(44)부사장을 앉혔다.

尹회장은 "친인척을 요직에 앉히고 빨리 승진시켰다면 발탁인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친인척의 경영 참여 배제,전문경영인 체제의 확립 등으로 웅진그룹은 98년과 지난해 경실련이 선정하는 '경제정의 기업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기업이 덩치를 키워가는 과정에서 친인척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으로 볼 수도 있지요. 그러나 어느 정도 규모를 키운 다음에는 고위·하위직을 막론하고 친인척의 기용은 최대한 자제해야만 기업 내부에서 공정성·신뢰감을 형성할 수 있을 겁니다."

김준현 기자

takeital@joongang.co.kr

웅진그룹은…

▶ 설립:1980년 헤임인터내셔날(웅진닷컴의 전신)

▶ 계열사:웅진닷컴·웅진코웨이개발·웅진식품 등 8개사

▶ 직원수:정규직 2천8백여명

▶ 특이사항:웅진닷컴은 출판물·학습지·잡지 등을 제작·판매하는 국내 최대 종합출판사, 웅진코웨이개발은 정수기·공기청정기·비데 부문 국내 1위 업체, 친인척의 경영 참여를 배제하고 발탁인사에 의한 전문경영인으로 운영 원칙 지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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