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만 3663개 ‘난수표 대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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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오후 서울 삼성동 코엑스 인근 커피숍. 충남 천안에서 온 정모(49)씨가 남편과 함께 서울 지역 대학 입시 요강 책자를 펴놓고 빨간 펜으로 줄을 치고 있다. 이들은 학원에 다니는 고3 딸을 대신해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코엑스에서 연 2011학년도 수시 대학입학정보박람회에 참석했다. 서울에 사는 할머니·할아버지도 손녀에게 도움을 주겠다며 ‘정보 싸움’에 동참했다. 정씨는 “아이가 영어는 잘하지만 내신이 달려 영어특기자나 글로벌인재 분야에 지원하려 한다”며 “그러나 해당 전형이 20여 개나 되는 데다 내신·영어에세이·구술면접 반영 여부와 비율이 달라 마치 난수표를 보는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남편 김모(51)씨는 “전형이 지나치게 복잡해 학생의 실력이 아니라 집안의 정보력과 경제력이 합격을 좌우하는 것 같다”며 씁쓸해했다.

다음 달 시작되는 2011학년도 수시 대입 원서 접수를 앞두고 수험생과 학부모가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다. 대학마다 전형 수가 너무 많은 데다 세부 전형방법도 제각각이어서 헷갈리기 때문이다. 고교에서 제대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자 복잡한 입시 내용을 정리해주고 컨설팅해주는 사교육업체만 호황을 누리고 있다.

본지가 이투스청솔과 공동으로 전국 4년제 225개 대학(캠퍼스 별도 계산)의 올해 수시·정시 전형을 분석한 결과 전형 수가 총 3663개나 됐다. 대학당 평균 16개가 있는 셈이다. 특히 수시모집은 전형 수가 2484개나 됐다. 지난해보다 149개가 늘었다. 수시와 정시를 합친 전형 수는 강릉원주대가 48개로 가장 많았고 서울대는 전형 수가 6개로 제일 적어 단순했다.

대학들은 다양한 인재를 뽑기 위해 전형을 세분화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건당 7만~10만원 하는 전형료 수익을 올리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조효완(은광여고 교사) 전국진학지도협의회 공동대표는 “국제학부 전형과 글로벌 전형에 무슨 큰 차이가 있겠느냐”며 “중상위권 대학을 중심으로 우수한 학생을 뽑기 위해 그물망을 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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