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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러갑니다, 이운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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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하프타임에 열린 대표팀 은퇴식에서 팬들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이운재. [수원=연합뉴스]

“대한민국을 대표할 수 있어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많은 사랑 감사드립니다.”

‘거미손’ 이운재(37·수원 삼성)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의 골문을 후배들에게 물려주던 순간, 대표로 보낸 17년의 세월이 떠오르는 듯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4만여 팬 앞에서 감사와 함께 변함없는 축구 사랑을 부탁했다.

이운재는 11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나이지리아와 평가전을 끝으로 대표 생활을 마감했다. 1994년 3월 5일 미국전에서 A매치에 데뷔한 뒤 이날까지 132차례 A매치를 치른 이운재는 0점대 방어율(경기당 0.86실점)과 국내 골키퍼 최초 센추리클럽 가입(A매치 100경기 이상 출전)이라는 위대한 족적을 남겼다.

청주상고 1학년 때 공격수에서 골키퍼로 전향한 그는 동물적인 감각을 익히기 위해 질주하는 자동차 번호판을 외우며 국가대표를 꿈꿨다. 경희대 3학년 때 94 미국 월드컵 대표로 발탁된 그는 독일과 조별예선 전반이 끝난 뒤 0-3에서 최인영을 대신해 투입됐다. 독일의 공세를 무실점으로 막아 내며 이운재라는 이름을 알렸다. 96 애틀랜타 올림픽이 끝난 뒤에는 폐결핵이 그를 가로막았다. 하지만 오뚝이처럼 일어선 그는 2002 한·일 월드컵 스페인과 8강전 승부차기에서 호아킨의 킥을 막아 내며 4강 신화를 이뤄 냈다.

유독 승부차기에 강했던 그는 2007 아시안컵 이란과 8강전, 일본과 3·4위전에서 모두 승부차기 승리를 일궈 내는 공로를 세웠다. 하지만 바로 그 대회에서 불거졌던 음주 파문으로 1년간 대표로 뽑히지 못하는 시련을 겪었다. 80시간의 사회봉사를 하며 와신상담한 그는 2008년 11월 남아공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사우디아라비아와 원정 때 대표로 돌아왔다. 레이저 빔을 쏘아대는 사우디 관중의 방해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사우디의 공세를 무실점으로 막아 내며 2-0 승리를 이끌었다.

수원월드컵경기장을 찾은 붉은악마와 수원 서포터스는 그의 이름을 연호하며 ‘이운재 ★’라고 적힌 카드섹션을 펼쳤다. 사라 브라이트만의 ‘이제는 헤어져야 할 때(Time to say goodbye)’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조중연 대한축구협회장은 그에게 공로패를 전했다.

그와 함께 필드를 누볐던 후배들은 그를 헹가래 치며 선배의 떠나는 길을 밝혔다. 숱한 강슛을 막아 낸 이운재의 왼손 검지는 완전히 접혀지지 않는다. 꺾이고 생채기 난 그의 손마디는 이날 더욱 빛났다. 그는 대한민국의 영원한 수호신이었다.

수원=최원창 기자



이운재는

■ 출생=1973년 4월 26일 충북 청주

■ 대표팀 경력=94 미국 월드컵, 2002 한·일 월드컵

2006 독일 월드컵, 2010 남아공 월드컵,

96 애틀랜타 올림픽,

2000·2004·2007년 아시안컵 A매치=132경기 114실점

■ 가족=부인 김현주(36)씨와 2녀1남(윤서·은서·윤우)

■ 애창곡=흘러간 트로트

■ 취미=골프(보기 플레이어·베스트는 74타)

■ 평생의 스승=김호(94 미국 월드컵 당시 대표로 발탁)

■ 생애 최고의 경기=2002 한·일 월드컵 8강 스페인전

■ 축구 신조=이기려면 기다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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