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계 만든 원료 무얼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나는 가끔 곰 가죽을 두른 남녀 한 커플이 아이를 두엇 데리고 압록강이나 두만강을 건너 한반도에 처음 이주하는 광경을 상상해 본다. 사람이 하나도 살지 않는 동물의 천국 한반도로 말이다.

수백만년 된 인류 조상의 뼈들이 아프리카에서만 잇따라 발견되는 바람에 다윈이 짐작했던 대로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출발했다는 설에 대해서는 별로 이견이 없기는 했다. 그러나 DNA 분석 방법의 획기적인 발전 덕분에 유럽인이나, 아시아인이나, 그리고 시베리아를 거쳐 얼어붙은 베링해를 건너 미 대륙으로 건너간 아메리카 인디언이나 모든 인류는 수백만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이 의심의 여지 없이 확실해졌다.

누군지 알 수 없는 한반도의 첫 이주자가 한민족의 조상이라면 약 7백만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침팬지와 갈라선 인류의 조상이 모든 인류의 어버이가 될 것이다. 그 인류의 조상은 또 어디에서 왔을지 이런 식으로 추적해 가면 지구상 모든 생명체의 근원을 약 40억년 전 태초의 지구에 출현한 최초의 단세포 생물까지 거슬러 올라 갈 수 있다. 태양계의 나이가 약 46억년이니까 생명의 입장에서는 지구의 역사에서 처음 6억년은 생명의 준비기간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태양계를 만드는 데 사용된 원료는 무얼까, 그리고 그 원료는 어디에서 왔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에 관련된 오늘의 퀴즈는 '1 = most abundant E. in the universe'다. 우주에서 가장 풍부한 무엇과 1이라는 숫자를 관련지으라는 문제다.

1920년대 영국에서 하버드대학에 유학 온 세실리아 페인이라는 여학생이 있었다. 페인은 별빛을 면밀하게 분석해 별빛의 선스펙트럼이 수소의 존재를 강하게 나타낸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당시 러셀 같은 천문학의 대가들은 철 등의 무거운 원소들이 별의 주성분이라고 믿고 있었다. 반대에 부닥친 페인은 자신의 결론을 상당히 희석하고서야 겨우 하버드대학의 최초 여성 천문학 박사가 됐다.

후일 페인의 해석이 정설이 되고 페인은 하버드대 교수까지 됐다. 이제는 가까운 별에서만 이뤄진 페인의 관찰이 수십억 광년 거리에 있는 은하까지 확대돼 수소가 우주의 대부분 별의 주성분인 것이 밝혀졌다. 그리고 별들 사이의 광대한 우주 공간에서도 수소가 주로 발견된다. 지금은 우주에는 전체적으로 수소와 헬륨이 3대 1 비율로 들어 있고, 나머지 원소들은 다 합해도 1%도 안된다는 것이 잘 알려졌다.

한편 페인이 별빛에서 수소의 스펙트럼을 관찰하던 같은 시대에 원자의 내부 구조가 알려지면서 수소의 원자핵에는 양성자가 단 하나 들어 있는 것이 밝혀졌고, 이 양성자의 수가 바로 다른 원소(element)들을 구분하게 해주는 원자번호가 됐다. 그러니까 우주에 가장 풍부한 원소인 수소의 원자번호가 1인 것이다.

현대 과학은 빅뱅 우주에서 처음 0.00001초 정도에 쿼크로부터 양성자가 만들어진 것을 밝혀냈다. 동양 고전에는 '太一生水'라는 말이 있다지만, 알고 보면 '太一生水素'가 맞는 말이다. 우리 몸에 개수로 제일 많은 수소는 1백50억년 전 빅뱅 우주에서 만들어진 모든 원소의 원조 원소다. 그러고 보면 페인이 최초의 단서를 제공한 대로 인간을 포함해 온 우주는 수소로 이루어진 거대한 가족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