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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꼽 빼는 마이어스 튀는 연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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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면

'오스틴 파워' 시리즈만큼 관객의 환호와 비난이 엇갈리는 영화도 없을 것이다. 007 시리즈를 조롱하다 못해 깔고 뭉개는 패러디, 노골적인 성적 표현과 이맛살을 찌푸리게 하는 걸쭉한 화장실 유머, 그리고 인종차별주의라고 욕 먹어도 할 말 없을 캐릭터 묘사….

'오스틴 파워'는 이 모든 정서적 부담을 감수하고라도 마이크 마이어스라는 배우가 벌이는 현란한 개인기의 향연에 기꺼이 동참할 관객들만을 초대하는 영화다.

그러나 소수의 열렬한 신도들만 떠받드는 여느 컬트 영화와 달리 박스오피스에서 대성공을 거둬온 점은 주목할 만하다. 시리즈 3편인 '오스틴 파워 골드멤버'는 지난 7월 미국에서 개봉하자마자 정상에 올라 매출액 2억달러(약 2천4백억원)를 거뜬하게 넘겼다.

게다가 톰 크루즈·귀네스 팰트로·브리트니 스피어스·스티븐 스필버그·케빈 스페이시·대니 드 비토·존 트래볼타 등 기라성 같은 할리우드 스타들이 기꺼이 깜짝 출연을 했다. 허접한 농담을 마구 집어던진 '쓰레기통'으로만 치부하기에는 분명 뭔가가 있는 것이다.

'오스틴 파워 골드멤버'의 제목은 007시리즈 '골드핑거'(1964년)에서 가져왔다. 온 몸을 금도금한 악당 골드멤버가 닥터 이블에게 합세한다.

닥터 이블은 골드멤버가 개발한 트랙터 빔과 인공위성을 사용해 남극의 얼음을 녹여 지구를 물에 잠기게 할 작전을 세운다. 작전명은 짓궂게도 치질약 이름을 딴 '프레퍼레이션 H(preperation H)'.

최고의 영국 스파이 오스틴 파워는 닥터 이블에게 납치된 아버지 나이젤 파워(마이클 케인)를 구하고 악당들의 음모를 분쇄하려 한다. 그의 여성 파트너는 섹시한 흑인 댄서 폭시 클레오파트라(비욘세 놀즈). 이 영화는 시리즈의 전편들과 마찬가지로 플롯이 엉성하지만 사실 플롯은 이 영화에서 크게 중요하지 않다.

각본·제작·연기 등 1인 다역을 수행하는 다재다능한 마이어스는 '어떻게 하면 웃길까'에 여념이 없어 보인다. 설령 그것이 썰렁하게 허공에 떠돌다 사라지는 1회성 실소일지라도. 이 영화에서는 고급 스포츠카 재규어가 섀규어('성교하다'라는 영어 속어인 shag를 합성한 단어)가 되고, 오스틴에게 아양을 떠는 일본인 소녀 자매 이름도 '성교하다(fuck)'를 살짝 바꾼 '푸크 유'와 '푸크 미'다. 어지간한 악취미다.

흘러간 미국 대중문화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이 있다면 재미는 쏠쏠하다. 오스틴 파워와 닥터 이블의 출생 비밀이 밝혀진 영화 막바지, "닥터 이블을 믿을 수 있느냐"는 폭시의 물음에 오스틴 파워는 더 홀리스의 히트곡 제목으로 답한다. "그는 짐이 되지 않아, 내 형제니까(He ain't heavy, he's my brother)."

마이어스는 91년 작고한 자신의 영국인 아버지에게 헌정하는 차원에서 오스틴 파워라는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영화 곳곳에서 콧대 높은 영국인들을 야유하는 듯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건 왜일까. 그는 이밖에도 네덜란드·벨기에·일본 등 수많은 나라를 '모욕'한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삼류로 전락하지 않는 건 마이어스라는 배우 덕이다.

마이어스의 저력을 느끼고 싶다면 영화 속 닥터 이블·오스틴 파워·골드멤버·팻 바스터드(스모 선수)를 유심히 지켜볼 것. 틀림없이 감탄사를 내뱉을테니. 15일 개봉. 15세 관람가.

기선민 기자

murph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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