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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남한 배우기' 활용 잘할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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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북한 경제시찰단은 8박9일간의 일정을 자신들의 눈높이에 맞췄다.

치약·칫솔 공장에서 정보기술(IT)분야까지 샅샅이 훑었지만 첨단산업이나 거창한 규모의 사업보다는 식품·섬유·신발 등 소비재에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또 제철·비료 등 북한이 산업시설을 가지고 있지만 설비가 노후했거나 효율성이 저하된 분야에 치중했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관광·레저산업 등 큰 기반 없이 당장 달러를 벌어들일 수 있는 사업도 포함됐다.

이들과 함께 일정을 소화한 정부 관계자는 "PDP텔레비전이나 디지털 캠코더·노트북 컴퓨터 등에는 별 관심을 갖지 않았다"며 분위기를 전했다.

북한 시찰단의 한 인사도 "많은 투자와 높은 기술력이 필요한 산업보다는 우리에게 맞는 산업에 집중하려 한다"고 털어놨다. 예를 들어 컴퓨터의 경우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 개발에 더 신경을 쓰겠다는 뜻이다.

박남기(朴南基·국가계획위원장) 북측 단장은 경주보문단지를 시찰하면서 "골프장에서 나오는 수입이 연간 얼마나 되느냐" "종업원들의 숙소는 어디에 있느냐" 등을 꼼꼼히 물었다고 한다.

시찰단의 이런 모습은 북한이 현재 크게 부족한 소비재 생산과 함께 많은 투자가 필요없으면서도 당장 외화획득이 가능한 소프트웨어, 또 외화가득률이 높은 관광레저산업에 관심이 많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북한이 눈에 보이는 것만 담아간 것은 아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경제시찰단이 우리의 산업 현장을 돌아보는 체험학습과 함께 거시적인 측면에서 우리 경제를 보고 갔으면 하는 바람을 정부는 가졌고, 그렇게 했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남한이 어떤 방식으로 국가예산을 세우고, 기업은 연구·개발(R&D)비용을 얼마나 집행하는지, 사회간접자본(SOC)을 어떻게 건설하는지 등에 대한 안목을 키웠으면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핵개발에 우리가 지나친 비용을 써서 경제가 피폐해졌구나. 그걸 경제개발에 쏟아 부었다면…"하는 느낌이 들었으면 하는 기대다.

이와 함께 한국개발연구원(KDI)과 같은 조직을 만들어 국가경제 회생을 위한 청사진을 다시 짜고 남북 경협에도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해올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정부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매제인 장성택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 부부장의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 북한의 2인자라는 평을 듣는 장부부장이 가감없는 정보보고를 할 것이며 이를 통해 金위원장이 '충격'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朴단장을 비롯한 경제시찰단이 곧장 평양으로 귀환하지 않은 대목은 동남아 경제와 한국 경제의 격차를 확인함으로써 남한이 적지않은 발전을 이뤘음을 깨닫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한 당국자는 "북한이 경제시찰단을 통해 체득한 것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북한의 몫"이라고 말했다.

정철근·이영종·고수석 기자

jcom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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