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예술관 방치하는 문화행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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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문화가 국가 경쟁력'이라는 말이 흔히 나오는 요즈음이다. 실제로 선진 외국을 다녀보면 이들 나라가 단순히 전자제품이나 자동차 같은 분야에서만 선진국이 아니라 시민생활 곳곳에 배어 있는 문화의 힘에 있어서도 선진국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선진 외국에서 문화의 힘은 대부분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문화시설, 특히 미술관이나 박물관, 공연장에서의 훈련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아무리 훌륭한 작가나 예술가가 있더라도 이를 이해하고 접할 수 있는 소양의 훈련과 기회가 제공되지 않는다면 문화의 저변을 확대해 나갈 수 없고 또 그 나라의 문화수준의 발달을 기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구에서는 조그마한 마을 단위에서도 10여개 이상의 문화공관·작가의 집·미술관·박물관·공연장 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얼마나 많은 미술관과 박물관이 그 도시나 마을에 있느냐가 결국 그 도시와 마을의 수준과 삶의 풍요성을 상징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다.

또 이 때문에 그 도시나 마을의 특색이 살아나고 조그마한 산간벽지에서도 세계적 수준의 문화행사가 열리고 또 그것을 보려고 수많은 관광객과 전문가들이 모여드는 것이다. 이는 결국 그 도시에 대한 애향심과 자긍심을 살려주며 결국 중앙과 지방, 도시와 마을들이 서로 네트워크로 연결되면서 특색을 가진 풍부한 삶의 원천으로 작용할 수 있게 하는 힘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왜 우리는 예부터 문화를 숭상하는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선진국에 비해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격차를 보이고 있는 것일까.

재정이나 경제력의 차이도 문제지만 문화공간의 확충과 미술관의 건립지원 등을 다루는 국민이나 정부, 관계기관의 관심과 애정의 차이에서 비롯된 원인이 더 크다는 게 본인의 생각이다.

현재 한국 전체에 있는 미술관과 박물관은 3백여개에도 미치지 못한다. 수많은 작가와 예술가들을 배출해낸 5천년 역사의 문화민족임을 감안하면 창피한 노릇이다. 그나마 이러한 공간들은 대부분 중앙에 몰려 있고 국립·공립 혹은 대기업들의 지원에 의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처음의 시작은 당연히 이렇게 되어야 하지만 문화의 다양성이 살아나려면 우리도 선진국처럼 개인 예술관·박물관·문화관·미술관 등이 적극적으로 설치 운영될 수 있도록 국가의 지원과 관심이 있어야 한다.

괴테하우스·세잔의 집들은 꼭 베를린이나 파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과 연관됐던 각 지역에 특색있게 자리잡고 있으며 그 지방과 연관된 가장 특색 있는 흔적들과 함께 남아 있어 더욱 그 지방의 삶을 풍성하게 하고 있다.

우리에게도 간혹 이런 흔적을 찾아 지방을, 마을을 순례하는 인사들이 있다. 하지만 이들에게 제대로 된 개인 예술관이나 미술관 등을 만나기보다는 토종 음식을 즐기다 잠시 스쳐가는 장소 이상의 공간을 제공하는 곳이 거의 없다.

우리도 이제는 우리가 가진 흔적들을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갖고 체계적으로 수집해 개인 예술관이나 박물관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애정을 보이고 지원을 해줘 특색 있고 풍부한 향토의 문화공간이 살아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할 때다.

이곳저곳에 특색 있는 모양과 색채를 달리 한 공간이 이뤄지고 외국으로의 여행보다 국내 지방 곳곳에 우리의 다채롭고도 풍성한 문화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그런 공간들이 많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행정이 지원해줄 시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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