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자원봉사 세계대회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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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다음주(週)면 서울 롯데호텔에 세계 90여개국의 자원봉사 지도자 수백명이 모인다. 그리고 국내 자원봉사계 인원 등 연 5천여명이 4박5일 동안 1백개 가까운 워크숍 등을 펼친다. 세계자원봉사협회(IAVE) 제17차 세계대회가 서울에서 열리는 것이다. 대회 주제는 "자원봉사로 화해와 평화를"-. 21세기 벽두에 벌어진 테러·전쟁 등 대결의 시대를 이웃사랑의 자원봉사(volunteering)로 풀어가자는 국제 자원봉사계의 염원을 분단 한국 서울에서 발현해 보이려는 것이다. 한국 자원봉사계로서는 처음 맞는 대규모 세계대회다. 그러나 이 대회를 알고 관심을 갖는 사회 지도층 인사들은 얼마나 될까. 현재 우리나라의 20세 이상 성인 자원봉사 인구는 전체의 약 16.5%. 중·고교생들을 제외하고도 3, 4백만명을 웃돈다.

이렇게 지난 10년간 자원봉사활동이 양적으로 크게 성장했음에도 제도적으론 허술하기 짝이 없는 실정이다. 지난번 강원도 수해 때도 그 부실함이 극명히 드러났다. 자원봉사자들에 대한 민·관 협동의 체계적 관리가 안돼 40만명이 넘는 자원봉사자들이 수해현장에서 우왕좌왕해야 했다. 각 수해지역 시·군에 자원봉사센터가 있었지만 말이 센터였지 전화 연결 하나 제대로 안된 곳이 태반이었다. 관(官)의 재해대책본부 역시 민(民)의 센터들과 따로 놀았다.

그동안 자원봉사계는 제도적 인프라 구축을 위해 정치권과 정부를 향해 많은 요청을 했다. 그러나 자원봉사지원법은 8년째 국회 문전에서 맴돌며, 중·고교생 봉사활동은 교육당국의 안일함·무관심 속에 7년째 제 길을 못찾고 있다. 한국자원봉사포럼이 지난 6년간 31회에 걸쳐 각 분야에 걸친 포럼·세미나를 열고 숱한 제도적 제안을 했음에도 정부와 정치권엔 그야말로 소 귀에 경 읽는 식이었다.

왜 이럴까. 이는 자원봉사에 대한 사회의 힘있는 지도층 인사들의 의식과 참여가 지극히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 선진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아직 우리 사회에 정착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1994년 시작돼 올해로 9회째인 중앙일보 전국자원봉사 대축제가 얼마 전 끝났다. 올해도 역시 전국에서 1백만명 이상의 자원봉사자들이 이 대회에 참가해 이웃사랑의 구슬땀을 흘렸다. 그러나 그 중 시장·도지사·정치인·기업가 등은 거의 없었다. 역시 학생·주부·직장인과 같은 우리 사회의 일선을 지키는 소(小) 시민들이 전부였다. 최근 대선후보들이 복지시설을 찾아 봉사하는 모습이 자주 보도되고 있다. 그러나 그들 머릿속에 과연 '자원봉사=국가발전'이라는 등식 하나쯤이라도 입력이 되어 있을까.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이 자원봉사를 발전시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는지 한번쯤 관심을 갖고 공부해 본 적이라도 있을까. 표를 얻기 위한 일과성 '쇼'가 아닌 진정 자원봉사의 의미나 알고 했으면 좋겠다. 하버드대의 1백년 된 자원봉사센터 필립브룩스하우스(PBH) 벽에는 루스벨트·케네디 등 하버드 출신 역대 대통령들의 봉사활동 경력들이 쭉 새겨져 있다. 케네디는 평화봉사단(Peace Corps)을, 존슨은 국내봉사단 VISTA를, 닉슨은 자원봉사법을, 클린턴은 미국봉사단인 아메리코(AmeriCorps)를, 그리고 최근 부시는 9·11 테러 후 자유수호봉사단 (USA Freedom Corps)을 각각 창설했다. 해비타트 운동을 벌이는 카터의 퇴임 후 활동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는 또 97년, 생존한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이 필라델피아에 모두 모여 자원봉사 정상회담(Volunteer Summit)을 열고 길거리로 나서 자원봉사의 모범을 보인 것도 보았다.

이제 자원봉사 세계대회를 맞아 우리나라 자원봉사 운동도 달라져야겠다. 특히 대통령을 꿈꾸는 대선후보와 같은 지도층부터 자원봉사에 솔선하는 사회가 되어야겠다. 그리고 그들의 관심과 영향력으로 정부가, 국회가 달라져 자원봉사계의 현안들이 하나 하나 풀어져 나가야 한다. 우선 대선후보들이 11일 오전 롯데호텔에서 열리는 IAVE 세계대회 개막식부터 구경을 와서 공부 좀 하고 가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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