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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절약 대책, 실천만 남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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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지난해 우리 경제는 고유가의 진통을 심하게 겪었다. 올해도 국제 유가는 단기적으로 하락할지라도 계속 높은 가격대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부존자원이 거의 없는 반면 에너지 다소비형 경제구조를 가진 우리로서는 공급선 확보도 중요하지만 수요 측면에서의 에너지 효율 개선 노력이 강화되어야 한다.

"절약이 생산"이라는 말이 있듯이 물리적으로만 본다면 한 단위 에너지 절약은 한 단위 에너지 공급과 동일하다. 하지만 에너지 공급이 늘어나는 것은 환경오염과 같은 외부비용을 수반하는 반면, 에너지 절약은 환경오염 저감과 에너지 위기 대응력 제고라는 외부 편익을 낳는다. 따라서 에너지 안보나 경제적 측면 모두에서 볼 때 외부 효과를 포함한 사회적 비용이 에너지 공급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에너지 절약 시책들이 적극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고유가의 고통이 계속되는 가운데 다가올 2월부터는 기후변화협약에서 선진국의 온실가스 감축을 강제하는 교토의정서가 공식 발효된다. 온실가스 배출량의 대부분이 에너지 소비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온실가스의 감축은 곧 에너지 소비의 감축을 의미하며 이는 경제성장의 위축으로 이어진다.

이번 교토의정서 발효로 이른바 '포스트 교토'에 대한 협상이 본격화할 것이며, 우리나라는 다음번 온실가스 감축 의무 대상국으로 주 타깃이 되고 있다. 만약 우리나라에 온실가스 감축 의무가 부여된다면 에너지 사용이 억제돼 최악의 경우 우리의 실질국내총생산이 2015년까지 매년 평균 0.5%포인트씩 낮아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에너지 효율 개선은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떨어뜨리는 고유가와 기후변화협약의 압박을 동시에 완화하는 방책이다. 따라서 에너지 효율 개선 노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동안 정부와 산업계가 부단히 노력한 결과 우리나라의 에너지 효율은 상당히 개선됐다. 그러나 1000달러의 부가가치를 생산하기 위해 우리가 0.3t(석유 환산)의 에너지를 투입하는 데 비해 일본은 0.09t, 독일은 0.13t을 쓰고 있다. 이러한 수치 비교는 우리의 에너지 효율이 아직도 많이 개선돼야 함을 시사한다. 그러면 현재의 에너지 낭비 요인은 무엇이며, 이를 제거하기 위한 에너지 효율 개선대책은 무엇인가?

지난 연말 정부는 향후 3년간 에너지 효율 8.6% 개선을 위한 에너지 절약 및 이용 효율 향상 종합대책을 수립했다. 이 대책에서는 기업의 자발적 에너지 절약을 유도하는 협약 체결의 대상 기업을 대폭 확대하고 하이브리드 차량을 비롯해 고효율 차량의 보급을 촉진하는 등 산업과 수송, 가정.상업 부문에서 총 88개의 절약과제를 추진할 예정이다. 이번 대책의 특징은 성장 범위를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적절한 효율 규제를 통해 에너지 소비행태의 변화를 유도하고, 국민들의 에너지 절약 인식 제고와 절약의 생활화를 위한 시민단체와 지자체의 역할을 강화하는 데 주안점을 둔 것이다.

에너지 절약 시책들은 개별적으로 독립된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범국가적인 시각에서 점검해 볼 필요가 있었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대책은 주로 에너지 주무부서인 산자부가 중심이 돼 시행했던 과거의 절약정책과는 달리 정부의 13개 부처가 함께 에너지 효율 개선 방안들을 수립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더구나 그동안 소홀히 여겨지던 국토 배치, 과학기술, 농수산업 분야에서도 에너지 절약 잠재량을 발굴하기 위한 구체적 시책들도 포함됐다. 그러나 이번 종합대책의 시행을 위해 필요한 투자액은 3년간 무려 6조4500억원에 이르고, 올해에만 2조원 이상의 재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돼 향후 재원 확보가 큰 과제다. 따라서 한정된 재원 내에서는 절약과제 간의 우선순위를 조정해 추진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또 평이근인(平易近人:제도가 간소해야 일이 쉽다)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번 대책에서 절약 시행 제도가 복잡하고 과도한 규제가 존재하는지도 다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에너지 효율 개선 정책을 효율적으로 운용하는 것은 정부가 해야 할 몫이기 때문이다.

방기열 에너지경제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