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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56>제104화두더지人生..발굴40년:11.부산 동삼동 패총(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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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21면

청운의 뜻을 품고 선택한 직장이었지만 시작은 초라했다. 내 첫 월급은 6천8백50원이었고 그것도 3개월만 임시로 근무하는 촉탁직이었다. 자리가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처지였다.

더구나 당시 문화재관리국 연구실은 문화재관리국 직제에 있는 정식 조직이 아니었다. 문화재관리국 문화재과 관리계에 소속된 비공식 임시기구로 학예사 한사람이 팀장을 맡고 있었다. 하지만 반가운 얼굴들을 만날 수 있었다.

대학동기인 현 국립중앙박물관장 지건길(池健吉)이 ROTC 근무를 마치고 나보다 한발 빨리 연구실에 들어와 있었고, 역시 대학 동기인 현 국립민속박물관장인 이종철(李鍾哲)과 대학 1회 선배인 현 국립문화학교 총장인 김병모(金秉模)씨가 학예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첫 출근한 날은 신정연휴 바로 다음날이었다. 당시 사무실의 난방시설은 연탄난로였다. 연구실에서는 구공탄 연탄이 아닌 조개탄을 때는, 연탄난로보다 조금 큰 난로를 사용했는데 화재의 위험을 막고 탄을 아끼기 위해 출근 무렵에 피우고 퇴근 무렵에는 꺼야 했다. 점심시간이면 난로 위에 도시락을 올려 데워 먹는 풍경이 당시 일반적인 사무실 모습이었다. 모든 게 모자란 듯 아쉽고 이래저래 시린 시절이었지만 돌이켜보면 푸근하기만 한 정경들이다.

가끔 난로 관리를 할 때가 있었다. 서울밥을 먹었다고는 하지만 미처 촌티를 다 벗지 못한 외모에 조개탄 가루를 뒤집어 쓴 모습이 동료·선배들에게는 딱하게 비쳤던 모양이다. 나를 첫 대면한 직원들은 '처음에는 조개탄 피우는 화부인줄 알았다'는 고백들을 들려주곤 했다. 지금 생각해도 입가에 미소가 절로 머금어진다.

나는 장교로 전역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예비군 소대장의 일도 맡게 됐다. 연구실에서 전문위원실로, 다시 자료실로 자리도 자주 옮겨 다녔다. 모두 직제에 없는 임시 기구들이었다.

문화재관리국과 인연을 맺고 나서 처음 참가하게 된 발굴조사는 그해 여름에 있었던 부산 영도섬 바닷가의 동삼동 조개무지 발굴이었다. 패총(貝塚)이라고 부르는 조개무지는 이땅에 터잡고 살았던 선조들이 조개를 잡아먹고는 한곳에 계속 껍질을 버려 생긴 말하자면 조개 쓰레기장이다.

고고학에서 쓰레기장이 왜 중요한 발굴 대상으로 꼽히는지는 이미 소개했던 부천 신앙촌 쓰레기장 발굴 이야기를 통해 어느 정도 전달되었으리라 생각한다.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은 선사시대에 살던 사람들의 삶이 어떠했는지에 대한 총체적인 해답은 타임머신을 동원하지 않는 이상 어떤 방법으로도 찾을 수 없다. 때문에 쓰레기장도 중요해진다.

더구나 선사시대 유적 중 조개무지 만큼 여러 가지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는 유적이 드물다. 당연히 고고학에서는 매우 중요한 자료로 취급되고 있다. 동삼동 패총이 처음 일반에 알려진 것은 일제시대인 1929년이었다. 현재 부산 동래고등학교 전신인 동래고등보통학교 교사 오이가와 다미지로(及川民次郞)가 우연히 발견해 현 서울대학교의 전신인 경성제국대학 교수 요코야마 쇼자부로(橫山將三郞)와 함께 간단한 시굴조사를 했다.

당시 빗살무늬토기편(櫛文土器片), 동물뼈로 만든 각종 도구, 흑요석으로 만든 석기 등이 수습돼 선사시대 유적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오이가와는 동삼동 반대편 바닷가에 있는 영선동 패총도 파헤쳤다. 남부 지방의 신석기시대 조개무지 유적이 부산의 영도에서 처음으로 알려지게 된 과정이다.

영선동 패총에서 발견된 덧무늬토기(隆起文土器)가 75년에 와서야 보물 597호로 지정된 사연이 재미있다. 어쩌면 정작 국가에 의해 보호받지 못한 불행한 운명의 우리 문화재·역사 유적들의 일반적인 행로일지도 모르겠다. 융기문토기는 시기를 기원전 4천년까지 올려보는 초기 신석기 시대 토기로 국내에서 발견된 토기 중 가장 오래 된 것 중 하나다.

동삼동 융기문토기는 처음 패총을 뒤진 오이가와가 가지고 있다가 45년 일본으로 돌아갈 때 미처 가져가지 못하고 한국인 동료에게 보관을 부탁했던 것을 세월이 지나자 보관자가 동아대학교에 기증하는 바람에 한국인의 손에 남을 수 있었고 보물로도 지정되었던 것이다.

정리=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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