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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온듯 … 언덕 위 다비장 <화장場> 대화하듯 … 무덤 박물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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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면

일본은 현대 건축학도들에게 살아있는 건축 교과서나 다름없다. 일본 근대 건축이 시작한 지점인 메이지유신 이후 자주적인 발전을 거듭하며 세계적인 건축가와 건축물들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전통과 현대의 조화, 독특한 기후와 자연을 존중한 그들만의 건축 언어는 일본을 '건축의 나라'로 떠오르게 했다. 특히 기능론에 치우친 서구 모더니즘 건축을 비판하면서 일본과 동양이 공간과 집에 대해 품고 있는 사유의 틀을 건축이론으로 풀어낸 '메타볼리즘(신진대사) 선언'은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건축을 역사의 신진대사를 적극적으로 촉진하는 과정으로 삼은 일본 건축가들의 다양한 행보를 마키 후미히코와 안도 다다오, 두 대조적인 건축가의 집구경으로 더듬어본다.

일본 규슈 지역 나카쓰시에 있는 '가제노오카 장재장(風の丘 葬齋場)'은 우리 말로 하면 '바람의 언덕 화장터'다. 불교에서 부르는 다비장(茶毘場)이란 표현이 더 어울릴 만큼, 육신을 원래 이루어진 곳으로 돌려보낸다는 장소의 의미가 땅과 집에서 절로 풍긴다. 건축가 마키 후미히코(文彦·74)는 산 자와 죽은 자가 헤어지는 곳을 옛 무덤 터에 잡았다. 건물은 음산한 화장터라기보다는 맑고 고요한 명상의 집이다. 혼을 달래는 재장(齋場)에서는 바닥에 깔린 유리창이 빛을 아래서 위로 아롱거리며 하늘로 오를 그의 정신을 기린다. 묵상 속에 이별식이 끝나면 주검은 긴 회랑을 거쳐 화장동으로 이동한다. 나지막한 능선을 따라 땅으로 기운 건물은 이승에서 쓰던 몸을 재로 태워 그가 다시 돌아갈 지하로 내려보낸다.

1시간30분쯤 걸리는 다비 시간을 유족들은 풍광이 좋은 잔디밭에서 소풍 나온 듯 지낼 수 있다. 애통 속에 헤어지지만, 이제 이곳에서 조금 더 살아야 할 자들은 무덤을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긴다. 짧든 길든 잠시 육신을 빌려왔던 이땅에서 고인과의 인연을 되새기고, 다시 눈을 들어 포근한 햇살과 바람을 받으며 살아있음이 주는 기쁨에 감사한다.

건축가 마키는 생사를 분리하는 공간에 온 이들이 그 뜻을 서서히 발견해가며 스스로 깨닫도록 땅과 건물을 조합시켰다. 사랑하는 사람을 땅으로 돌려보내며 바람이 들려주는 소리를 듣던 사람들은 땅에 서서 그들 자신이 한 채 한 채 집이 된다.

안도 다다오(安藤忠雄·61)는 독학으로 건축을 익힌 권투선수 출신 건축가다. 그래서일까, 그가 지은 집들은 강력한 의지로 환경과 '싸우는' 형상을 하고 있다. 그 싸움을 통해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타인과 대화한다.

오사카 지카쓰에 있는 '아스카(飛鳥) 역사 박물관'은 들어가는 길부터 사람들을 긴장시킨다. 그 형국은 몽상과 광기를 담고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우선 많은 계단이 있다. 한 발 한 발 따라 오르지 않으면 본 건물에 다다를 수 없다. 그 정상에 육중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바벨탑처럼 하늘로 솟아있다. 고분시대의 함축이자 흔적 같다. 안도는 콘크리트를 즐겨 쓴다. 노출 콘크리트는 가장 정직하고 과묵한 재료다. 그 어떤 소재보다도 빛을 그대로 반사하기에 이 세상에 흩어지는 빛을 보게 하는 신통력을 지녔다. 회색 노출벽은 우리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 되기도 한다.

사후 세계의 무덤 이야기를 담을 박물관은 현실 구조물이다. 그 두 세계를 연결하는 자연의 빛이 콘크리트를 타고 흐른다. 집은 거죽과 모양새보다는 그 집이 품고 있는 본질을 체험하게 하려는 도구임을 안도는 말하고 있다.

마키와 안도는 건축가가 '생각하는 사람'임을 보여준다. 그들은 진부해진 일상을 집으로 깨뜨린다. 고정관념과 도식을 뛰어넘는 건축물은 삶을 찌르는 바늘이다. 그래서 건축가는 '헛되고도 헛된' 이 세상을 유지시켜 주는 땅에 침을 놓는 침술사가 된다.

일본 나카쓰·오사카=정재숙 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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