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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기행>붉은 산 푸른 초원 절대의 적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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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면

#서역을 넘어 무인구로

히말라야 산맥 북쪽에 위치한 티베트는 '은둔의 나라'다. 해발 4천m에 위치해 있으며 약 2백50만명의 국민 대다수가 라마교를 믿고 있다. 오랜 세월 외부와 단절된 상태에서 그들만의 독특한 역사와 문화·자연을 간직해 온 '지구상의 오지'다. 더욱이 티베트의 창탕(羌塘)고원에는 아직도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무인구가 존재한다. '현재는 물론 내세에도 사람의 흔적을 찾기 힘든 곳'이라고 현지인들이 말하는 지역이다.

나는 1990년부터 10여차례 티베트를 탐험하면서 '신비의 땅(무인구)'에 대한 호기심과 매력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이번 티베트 탐사는 처음으로 처와 세 딸이 동행하는 가족여행이 됐다. 가족들은 라사(拉薩)와 시카체를 경유해 네팔로 넘어가고 나는 시카체에서 혼자 무인구를 찾기로 했다.

지난 6월 초 우리 가족 5명은 비행기를 타고 중국의 청두(成都)를 거쳐 티베트 라사(해발 3천5백68m)에 도착해 대길(大吉)반점에 여장을 풀었다.

티베트 특유의 정취에 흠뻑 빠져드는 라사의 포탈라궁과 파조제 거리의 조캉사원 등을 둘러보고 시가체, 좌촐라파스(5천2백20m)를 넘어 국경도시 장무(樟木)에 도착했다.

티베트 국경인 장무에서 가족들을 네팔로 보내고 나니 왠지 외롭고 허전했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북부 고원으로 출발했다.

티베트 무인구 고원의 면적은 약 20만㎢,평균 고도는 해발 5천m로 한랭하고 건조하다.

이번 목표는 무인구에 있는 '말커차이카아 호수'를 찾아가는 것이다. 장무에서 거리는 약 1천5백㎞. 통파라스(5천50m)와 사가, 초진을 거쳐 4일 만에 니마(尼瑪)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튿날 2백20㎞ 떨어진 룽마(絨瑪)를 향해 발길을 재촉했다. 그곳에는 황량한 고원에 온천이 있고 '쟈린산(加林山)'에는 선사시대의 암각화(岩刻畵)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시 보는 낯익은 산들이지만 모두 특색있는 풍경이다.

누렇게 시든 초원에는 야생 당나귀떼가 갓 피어난 풀을 뜯고 있었다. 그리고 뿔이 긴 황양(黃羊)·영양·늑대들이 뛰노는 모습은 마치 별천지와 같다.

차는 초원을 달려 룽마 마을에 도착했다. 네다섯 채의 유목민(遊牧民)가옥 옆으로 야크 몇마리가 호수가에서 풀을 뜯고 있었다. 마을 뒤로 솟아있는 산은 붉은 색으로 채색돼 그 모습이 매우 특이하고 아름다워 넋을 잃게 한다.

더욱이 이곳에는 룽마 온천과 선사시대의 암각화가 있다고 한다. 나는 우선 주인집에 부탁해 현지 안내원 한 사람을 고용했다. 그의 이름은 상페이(桑培·35)로 티베트족이다. 그에게 룽마온천과 암각화가 있는 곳,그리고 '말커차이카아 호수'를 아느냐고 물었다. 그는 온천과 암각화지대는 여기서 가까운 곳에 있으며 호수에도 가본 적이 있다고 말한다.

룽마온천은 이곳에서 약 7㎞ 거리. 고원을 달려 산밑 골짜기 어귀에 이르니 계곡에서 증기가 피어오른다. 작은 개울을 건너 올라가니 수백㎡에 달하는 온천지대가 나타났다. 산비탈 아래로 약 25평 정도의 온탕이 있는데 곳곳에서 뜨거운 물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그 옆으로 8∼9m 높이의 석주(石柱)가 빽빽하게 서있다. 석주 중에는 깎이고 침식돼 남자의 성기 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것도 눈에 띄었다.

#쟈린산의 암각화

창탕 고원의 날씨는 연일 쾌청했다. 오늘은 선사시대의 유적지 쟈린산을 탐사하고 '말커차이카아 호수'로 갈 계획이다.

아침식사 후 약 4㎞ 떨어진 쟈린산을 향해 떠났다. 자갈이 깔려있는 고원을 벗어나 쟈린산 산자락에 이르니 산 밑에는 유목민의 집이 한 채 있었으나 인적이 없었다. 암각화라면 암벽 평탄한 곳에 그려져 있을 것으로 상상하면서 안내원을 따라 올라갔다. 산등성이에 도착하니 암벽은 없고 넓은 산등성이에는 커다란 바위가 수없이 깔려 있었다. 바위는 연한 자홍색으로 매우 단단했고 암각화는 그위에 그려져 있었다. 그림은 사람이 야크와 영양을 사냥하는 장면들이었다. 오랜 풍화 작용으로 마모돼 내용이 분명치 않은 그림도 있었다. 안내원은 선사시대의 유물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런 고원의 오지에 어떻게 선사시대의 문화가 존재하게 되었는지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다.

암각화 탐사도 끝났다. 다시 북쪽을 향해 출발했다. 이 곳에서 호수까지는 90㎞ 거리다. 황량한 고원과 산을 넘고 달리는데 왼쪽으로 한줄기 오솔길이 길게 뻗어있었다. 안내원은 '루구(魯谷)로 가는 길'이라고 알려준다. 루구는 지난해 가이저(改則)를 거쳐 탐방했던 곳으로 이번에도 호수탐사가 끝나면 위자(玉札)를 거쳐 다시 찾아갈 예정이다. 나는 차에서 내려 길표시로 돌을 세워놓았다.

여기서부터 북쪽으로 가면 무인구 지역이다. 역사도 문화도 없는 참으로 공허하고 무존재의 지역이다. 다만 황량한 고원으로 이어지는 미지의 지역일 뿐이다. 굽이굽이 변화하는 매혹적인 경관을 그대로 지나치기가 아쉬어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었다.

멀리 누런 초원 저편으로 겹산이 하나 있었다. 뒤에는 눈덮인 산이고 앞에는 검은 색 산이 누워있다. 어쩌면 저렇게 아름다울까. 참으로 환상적이었다. 나도 모르게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 만일 이곳에 다른 사람이 있었다면 그는 어떻게 표현하였을까. 그 역시 '아,무인구의 심처(深處)여'라고 소리쳤을 듯싶다.

계속 환상적인 경관은 이어졌다. 멀리 만년빙설이 덮여있는 설산이 우뚝 솟아있고 그 산자락으로 야생 당나귀 네마리가 초원을 달리고 있다. 티없이 순수하고 평화로운 풍경을 보면서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비경'이라고 생각했다. 얼마를 더 가는데 안내원이 "야생 야크"라고 소리쳤다. 바라보니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야생 야크 세마리가 풀을 뜯고 있었다. 야생 야크는 티베트어로는 중(仲)이라고 한다. 생김새는 가축으로 기르는 야크와 다른 점이 없지만 체구가 크고 사나우며 숫자가 적어 좀처럼 만나기 힘든 짐승이다. 그중에 희고 검은 털이 섞여있는 놈은 배의 털을 땅까지 드리우고 있는데 몸무게가 1t은 될 듯싶었다. 가까이 접근하자 한놈이 심상치 않게 노려본다. 안내원이 위험하다고 해 급히 사진을 찍고 돌아섰다.

#드디어 '말커차이카아호'에 이르다

오후 1시쯤 넓은 습지대에 이르렀다. 습지의 중심부는 아직 빙설이 녹지 않고 남아 있었다. 안내원은 "거리는 약 5㎞로 습지를 건너 산을 넘으면 호수에 닿는다"고 말한다.

우리는 습지대를 피해 산비탈의 측면에 붙어서 조심스럽게 가는데 갑자기 지프 앞바퀴가 미끄러져 습지에 빠졌다. 두시간의 작업 끝에 빠져나왔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산등성이의 평탄한 지대를 조심스럽게 돌아가니 마침내 호수가 나타났다. 오후 5시였다. 인류가 아직껏 들어가지 못한 호수가에 서있었다. 호수는 녹색의 빛을 띤 타원형의 모습으로 누워있으며 먼 산에는 봉우리마다 만년설이 빛나고 있었다. 주체하지 못할 감격이 온몸을 뚫고 지나간다. 치밀어오르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엉엉 울었다.

나는 서울에서 미리 준비한 낚시와 그물을 들고 호수로 내려갔다. 호수는 바람도 없이 잔잔했다. 나는 우선 물을 손에 떠서 입에 넣었다. 그 순간 너무 짜서 뱉어버렸다. '말커차이카아 호수'는 염수였다.

그리고 주변에는 내가 좋아하는 꽃은 물론 인간의 발자국 하나 보이질 않는다. 이제 '말커차이카아 호수'의 탐사도 끝났다.

티베트는 꿈이 있는 곳이다. 호수에서 서쪽으로 '서우캉르(色烏崗日·6천1백m)'와 '장서캉르(藏色崗日·6천4백m)' 산이 있는데 유목민들은 '두개의 산 사이에 이르면 모든 기구의 기능이 정지된다'고 말한다. 시계와 라디오는 물론 모든 기계의 기능이 멈추는 곳이다. 나는 다음을 약속하며 루구를 향해 출발했다.

박철암(84·경희대 중문과)씨는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히말라야에 발을 내디딘 사람이다. 1962년 히말라야 다울라기리 1봉에 정찰대를 이끌고 올랐다. 그후 40여년간 히말라야를 비롯한 티베트 지역을 두루 탐사해 왔다. 그는 지난 여름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티베트의 무인구(無人區:사람이 살지 않는 구역) 탐사를 마치고 귀국했다. 그의 체험담을 소개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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