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은 '단일화' 발길은 한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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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민주당이 또 한번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김명섭(金明燮)·강성구(姜成求) 의원이 1일 전격 탈당을 선언했다. 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후단협) 소속 의원들도 3일 회동을 하고 집단 탈당 여부를 최종 결정할 예정이다. 이들은 "탈당계를 받은 의원 수가 17명선"이라며 독자적인 원내교섭단체 구성을 추진 중이다. 후단협 소속인 박상규(朴尙奎)·김원길(金元吉) 의원은 "4일 우선 탈당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는 반노(反노무현) 진영의 탈당 러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당의 요직을 지낸 중진이 상당수 포함돼 있어 파장이 적잖을 전망이다.

김명섭·김원길·박상규 의원이 모두 사무총장을 지냈다. 朴의원은 중소기업특위 위원장, 김원길 의원은 보건복지부 장관, 김명섭 의원은 국회 정보위원장도 각각 역임했다. 유용태(劉容泰)사무총장은 31일 한화갑(韓和甲)대표에게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劉총장의 합류 가능성도 주목된다.

이들은 자신들의 탈당에 대해 "후보 단일화를 위한 선발대 역할을 위해서"라고 주장한다. 朴의원은 "현재의 盧후보로는 대선 승리가 어렵기 때문에 혼자라도 나가 단일화를 위한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김명섭·강성구 의원도 "일단 단일화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들이 스스로 밝힌 명분대로만 움직일지는 두고 볼 일이다. 후단협의 한 핵심 의원은 "金·姜의원이 어제까지 말 한마디 없다가 갑자기 탈당을 선언했다"며 사전조율이 없었음을 밝혔다.

이들은 김영배(金令培)전 후단협 회장과 점심을 같이하면서 행동통일 방안을 논의했으며, 姜의원은 오후 3시까지도 기자들과 만나 탈당설을 부인했었다. 그러다 오후 6시 朴·金의원의 탈당 선언 직후 조기 탈당으로 급선회했다고 한다.

朴의원도 이날 오후 의원회관의 한 의원 방에서 열린 후단협 수뇌부 회의에 참석해 탈당 입장을 밝힌 뒤 자리를 뜬 것으로 전해졌다.

회의엔 김원길·김덕배·이윤수·설송웅·박상규 의원 등 후단협 핵심 멤버와 劉총장이 참석했다. 朴의원은 또 회의 직전 한나라당 황우여(黃祐呂)의원 방에 들러 2∼3분간 밀담을 나눴다. 이미 김명섭·강성구 두 의원은 한나라당 입당설이 끊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이들의 한나라당행 가능성에 더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나라당 김영일(金榮馹)사무총장은 "우리는 8일까지 정기국회를 조용히 넘겼으면 한다"면서도 "우리 당을 노크하는 숫자가 민주당 쪽에 더 많다"고 말해 이들뿐 아니라 추가 이적(移籍)이 있을 것임을 예고했다.

그래서 이들의 탈당이 후보 단일화 논의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盧후보 쪽에선 "오히려 찬물을 끼얹는 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며 "탈당의 명분을 얻기 위한 주장"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들의 탈당으로 향후 정국의 혼미 양상은 더욱 심화될 것 같다. 한나라당은 탈당파를 끌어들여 '이회창 대세론'을 확산시키려고 할 태세다. 민주당과 '국민통합21'간의 단일화 논의도 새로운 국면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韓대표는 탈당을 보고받고 "많은 국민과 당원, 소속 의원들이 단일화를 통해 대선 승리를 이루자는 데 대체적 의견을 같이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당 내외에서 새로운 상황이 조성되고 있는 만큼 의원들은 개별행동을 자제하고 당내에서 중지를 모아달라"고 말했다.

나현철 기자

tigerace@joongang. co. 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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