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스타산책] 프로농구 덩크슛 1위… 크리스 랭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프로농구 SK 나이츠의 이상윤 감독은 그를 "팀의 보물"이라고 한다. "공격은 물론이고 수비와 팀플레이도 좋다"고 칭찬한다. 그런데 그 보물단지가 자기 몸을 잘 챙기지 않는 것 같아 걱정이다. 워낙 가족 보살피는 일에 헌신적이기 때문이다. 혹 체력에 이상이 생길까 우려할 정도다. 지난 가을 미국에서 데려온 장신 센터 크리스 랭(26) 얘기다.

랭은 대학(노스캐롤라이나) 동창인 동갑내기 아내 사운테, 그리고 6개월 된 딸 매케일라와 함께 경기도 용인의 SK 나이츠 체육관 숙소에서 산다. 원정 경기를 다닐 땐 널찍한 팀 버스 대신 승합차로 가족과 함께 이동한다. 항상 아기는 랭이 안고 다닌다. "아기 재우고 기저귀를 갈아주느라 밤잠을 잘 못 자는 것 같더라고요." 구단 직원들의 말이다.

하지만 코트에서의 플레이는 최고다. 14일 현재 프로농구 각종 기록 상위권이다. 덩크슛 부문에선 68개로 1위. 몸값(이번 시즌 7개월간 약 1억5000만원) 정도는 너끈히 하고 있는 셈이다. 그를 지난 11일 SK 나이츠 체육관에서 만났다.

역시 애처가였다. 가족 사진을 찍자고 하자 "아내가 오늘은 몸이 좀 안 좋아 쉬어야 한다"며 사양했다. 한국에 올 때 '가족이 함께 살 수 있느냐'가 최우선 고려사항이었던 그다. "아내는 노스캐롤라이나대학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했는데 학점 3.96을 받은 똑똑하고 예쁜 여자다. 가족의 자랑이다."

2년 전 결혼한 그의 부인은 흑인이다.미국에서 성공한 흑인 선수가 백인 여성과 결혼하는 경우는 흔하지만 백인 선수가 흑인 여성과 결혼하는 일은 흔치 않다. "10년 전 중학교 때 처음 만나 첫눈에 반했다. 매일 만나고 전화했다. 그런 우리가 동네에서는 큰 이슈가 됐다. 뒤에서 수군거리는 사람도 많았는데 상관하지 않았다. 우리가 행복하면 그만 아닌가."

랭이 다닌 노스캐롤라이나대학은 농구 명문대다. 랭은 1학년 때부터 주전센터를 맡은 스타였다. 그래서인지 한국에 온 외국인 선수들 가운데 '가장 기본기가 좋은 선수'로 평가받는다. 노스캐롤라이나대의 전설적인 농구감독 딘 스미스가 스카우트한 마지막 선수이기도 하다. 그는 딘 감독에게 상당한 애정을 갖고 있다. "모든 사람이 딘을 존경한다. 딘과 함께 운동할 때는 선수의 대답은 단 두 가지였다. 예스(yes)냐 예스 서(yes sir)냐. 평소엔 아주 자상하다."

▶ "가, 나, 다, 라 …" 크리스 랭이 용인 SK체육관 벤치에 누워 한글과 영어 발음이 비교된 표를 들고 한국말을 익히고 있다. 외국인 선수 중 유달리 한글에 관심이 많은 그는 요즘엔 한글 간판을 읽기 시작했다. 오른쪽 사진(KBL 포토스 제공)은 부인 사운테와 딸 매케일라. 용인=김상선 기자

랭은 아직도 한 달에 한번쯤 딘과 통화를 한다면서 "그는 하루에도 수십명씩 만나면서도 오래 전에 만난 사람들까지도 그들의 이름과 가족관계를 전부 기억하고 있다"고 칭찬했다.

랭이 딘 감독만큼이나 존경하는 사람은 또 있다. 대학 선배인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이다. "대학 시절 노스캐롤라이나대 재학생과 NBA에서 뛰는 졸업생이 매년 여름 2주간 캠프를 차리고 함께 훈련했다. 조던은 나에게 '내가 본 훅슛 중 가장 훌륭한 것 중 하나다, 항상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라고 격려했다."

랭은 졸업 후 3년 간 NBA 캠프에 참가했지만 진출하지 못했다. 기량은 뛰어나지만 2m2㎝의 키가 NBA의 센터로서는 작은 편이라서다. 미국 마이너리그팀에서 뛰던 지난해 아기를 갖게 되면서 일단 돈을 벌려고 한국에 왔다. "한국에서 뛰며 기량을 더 닦으면 NBA 진출에 성공할 수 있다고 본다. 항상 준비하고 자신감도 갖고 있다." 한국 농구에 대해선 "대단히 빠르고 3점슛에 능해 쫓아다니기가 힘들다"고 평가한다.

SK 구단은 그와 내심 장기계약을 하고싶어 한다. 그러나 그가 얼마나 한국에 머물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하지만 한국에 있는 동안은 열심히 한국을 배우겠다는 랭이다. 그래서 틈틈이 한국말 공부를 한다. 반말로 "알았어" "배고파" 정도는 익혔다. 식당에 가면 스스로 더듬더듬 주문을 하며 누가 옆에서 거들지 못하게 한다.

그는 골프를 잘 친다. "어릴 때부터 즐겼다. 살살 달래서 치면 드라이브샷이 310야드 정도 나간다"고 자랑했다. 핸디캡은 12 정도지만 쇼트게임을 더 다듬으면 싱글 골퍼 수준은 된다고 한다. 하지만 아기가 생기고나서는 골프채를 만지지도 못했고, 아예 한국에 골프채를 갖고 오지도 않았다.

"골프는 참을 수 있지만 크리스천으로서 교회에 못 가는 건 아쉽다. 한국까지 와서 세계 최대의 교회인 여의도 순복음교회에 못 가봤다고 하면 미국의 친지들이 실망할 텐데." 오늘도 그는 NBA에서 뛰는 자기 모습을 그리고 있다.

용인=성호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