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감사만이 살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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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8면

대우그룹·엔론 등 최근 국내외 대기업에서 잇따라 터져 나오는 부실 감사의 여파로 회계사들이 징계를 받거나 법정 소송에 휘말리는 등 공인회계사 업계가 뒤숭숭하다. 더욱이 지난해부터 공인회계사 시험 합격자가 이전보다 갑절이나 많은 연간 1천여명씩 배출되면서 회계사들의 일자리 구하기도 한층 어려워졌다.

안진회계법인의 컨설팅 전문가인 이정인(40)상무와 금융기관 감사를 전담하고 있는 이길호(38)상무를 만나 업계 현안과 감사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회계사들의 노력에 대해 들어봤다.

-안진의 제휴사였던 미국 회계법인 아서 앤더슨이 결국 파산했는데.

▶이길호=엔론에 대한 부실감사로 파문을 일으킨 아서 앤더슨은 세계 84개국에서 현지 회계법인과 제휴관계를 맺고 있었다. 안진을 비롯한 각국의 제휴사들은 비록 엔론 사태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지만 앤더슨의 파트너로서 실추된 이미지를 갖고 활동할 수 없어 현재 앤더슨과 결별했다.

▶이정인=안진은 7월 2일 앤더슨이 붕괴되는 상황에서 신속하게 딜로이트 투시(DTT)로 제휴사를 바꾸었기에 고객사가 떨어져나가는 등의 실제적인 피해는 거의 없었다.

-회계법인에서 컨설팅 업무를 분리해야 된다는 주장이 많은데.

▶이길호=엔론 사태를 계기로 회계 관련 업무와 컨설팅 업무의 분리는 어느 정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감사와 컨설팅 서비스를 동시에 제공하게 되면 회계사의 독립성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회계 관련업무와 컨설팅 업무를 분리하는 방향으로 관련 제도가 바뀔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이정인=회계법인에서 컨설팅 업무가 떨어져 나가는 추세인 것은 사실이지만 회계법인이 컨설팅 업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경우 새로 마련된 기업개혁법(사베인-옥슬리법)에 따르면 회계법인이 컨설팅업무를 수행하지 못하게 하거나, 감사고객회사에 대해 컨설팅을 하지 못하게 하지는 않는다.

-회계사 업계의 변화가 기업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나.

▶이길호=기업이 부담해야 할 감사 보수가 인상될 것이다. 또 회계업무에 대한 기업 경영진의 책임이 한층 무거워질 것이다. 미국의 경우 요즘 감사보고서에 의무적으로 최고경영자(CEO)와 최고재무책임자(CFO)가 확인 서명을 하도록 되어 있다. 한국도 조만간 유사한 규정을 신설하게 될 것으로 본다.

-국내 기업의 분식회계가 어느 정도 개선됐나.

▶이정인=수년 전의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한국 기업의 분식회계가 눈에 띄게 줄었다고 판단된다. 무엇보다 크게 변한 부분은 기업들의 의식변화이다. 종전에는 분식행위가 죄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중요한 사회적 범죄라는 인식이 크게 늘어났다.

▶이길호=지난 수년간 상당한 개선이 있었지만 아직 개선할 점이 많다. 우선 신뢰성 있는 재무 정보를 얻기위한 사회적 투자가 불가피하다. 또한 경영진의 영향에서 벗어나 객관적인 재무 정보를 작성할 수 있도록 회계부서의 독립성이 확보돼야 한다.

-업계의 요즘 이슈는.

▶이정인=매년 1천여명씩 배출되는 회계사를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일거리를 어떻게 만들어 낼 것인가하는 것이다. 지난해 상당수의 인원이 본인이 원하는 실무수습기관을 구하지 못했고 올해는 신규 회계사 채용인원이 큰 폭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돼 수급 문제가 매우 심각해졌다. 또 감사업무의 결과에 대한 소송 사건이 늘어나는 등 과거와는 달리 회계사의 사회적 책임이 더욱 강화되고 있다. 그러나 감사보수는 여전히 과거 수준에 머물러 있어 이를 현실화하는 문제도 업계의 현안이다.

유권하 기자

khyou@joongang.co.kr

◇안진회계법인(대표 양승우)의 모태는 차재능회계사(2001년 회장직 은퇴)가 1986년에 설립한 안암회계법인이다. 회계사 40여명으로 출범한 이 회사는 글로벌 회계법인인 아서 앤더슨과 제휴, 급성장하며 설립 5년 만인 90년 3월 안진회계법인을 합병해 문패를 바꿔달았다. 99년에는 세동경영회계법인을 합병했다. 올해초 아서 앤더슨이 붕괴되자 지난 7월 파트너를 딜로이트 투시로 바꿨다. 안진은 딜로이트의 기존 국내 법인인 하나회계법인과 또 한번의 합병을 앞두고 있다. 조직은 세무자문·감사자문·국제기업금융(GCF) 등 세 본부로 구성돼 있고 기업의 각종 리스크를 관리해주는 리스크 컨설팅 그룹(RCG)과 기업의 인수합병(M&A)을 담당하는 팀(TAS)이 별도로 조직돼 있다. 공인회계사 3백35명, 미국 회계사 41명, 수습회계사 1백76명 등 모두 7백89명의 회계·세무·컨설팅 전문인력이 포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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