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인질극의 비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전세계를 경악하게 만들었던 모스크바의 인질극이 러시아 특수부대의 전격적인 진압 작전으로 막을 내렸다. 폭탄으로 중무장한 테러리스트들이 인질들 중간 중간에 앉아 자폭 테러를 위협하는 상황은 인질 수백명의 목숨만이 아니라 세상을 위협하는 극단적 테러리스트들에게 인류의 자유 의지가 굴복되느냐 마느냐 하는 절체절명의 위기 순간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러시아군이 전격적으로 작전을 행한 것은 상황의 불가피성과 위급성을 감안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1백7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일은 애석한 일이다. 특히 사망자 대부분이 총상보다는 테러 진압을 위해 사용한 특수 신경가스에 의해 중독돼 사망했다는 의혹이 있어 더욱 안타깝다.

체첸 분리주의자들은 이번 사태가 러시아군의 체첸 침공에 대항하는 전쟁임을 강조하고, 러시아인들은 체첸에서 더 잔혹한 전투를 벌이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 24일 유엔 안보리가 또다시 결의를 통해 전세계에 밝힌 것처럼 인질극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는 극악한 테러리즘일 뿐이다. 그들의 주장이 아무리 순수하고 절박하다 하더라도 무고한 사람들을 인질로 잡아 그들의 생명을 담보로 세계를 협박하는 테러리스트들의 행동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인류는 어떠한 형태의 테러에 대해서도 반대한다는 점을 테러리스트들은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극단적 테러는 그들의 주장을 강화시키기보다 오히려 그들을 더욱 단절시키고 고립시킬 뿐임을 알아야 한다.

9·11 테러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발생한 이번 모스크바 테러 사태로 인류는 또다시 수많은 숭고한 목숨을 잃었다. 이번 사태는 비극이었지만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인류는 테러리스트들에게 인류가 어떠한 테러에도 결코 굴복하지 않고 결국 승리할 것임을 다시 한번 과시했다.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들에게 애도를 표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