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2세 '향수'가 빚은 한국美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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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동포 2세 린다 수 박(한국이름 박명진·42)이 펴낸 이 동화는 정확하게 이미륵의 삶과 작품을 연상시킨다. 3·1운동 직후 독일로 망명해 그곳에서 생을 마친 이미륵이 고국에 대한 향수 때문에 한국 관련 이야기를 독일어로 여러 권의 소설을 발표했듯이『사금파리 한 조각』(원제 A single shard)을 쓴 박명진 역시 똑같은 이유에서 이 작품을 써냈다.

작품에 대한 평가 역시 이미륵과 박명진 모두 매우 높다.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의 경우 독일의 중·고교 교과서에 수록됐을 정도로 문장이 빼어났고, 1970년대 이후 역수입돼 범우사·계수나무 등 출판사 번역물을 통해 국내 독자들을 만나며 감동을 전해왔다. 박명진 역시 그렇다.

50년대에 이민 간 부모 밑에서 태어난 그는 12세 때 잠시 한국을 다녀갔을 뿐 한국은 잘 몰랐고, 스탠퍼드대학에서는 영문학을 공부했다. 뒤늦게 한국문화에 대한 갈증으로 '공부'끝에 펴낸 이 동화는 올해 초 동양인으로 처음이라는 뉴베리상을 작가에게 안겨줬다. 뉴베리상은 전미도서관협회에서 주는 권위 있는 아동문학상. 뉴욕 공립도서관이 선정하는 '1백권의 필독서'에도 뽑히기도 했다.

『사금파리 한 조각』은 12세기 고려시대가 배경. 고아로 불우하게 성장한 '목이'(버섯 이름에서 따왔다)라는 소년이 갖은 어려움을 물리치고 왕실용 고려청자를 납품하는 으뜸 도공으로 성장하는 과정이 스토리의 축이다. 소재 자체가 '한국적인 것'이고, 이 작품에 들인 품도 인정할 만하다. 한국의 정서와 당시 시대상, 서민의 삶에 대한 묘사는 본디 이 작품이 한국어로 쓰여졌겠거니 싶을 정도다.

이를테면 쌀과 고기에 대한 예전 한국인들의 선망의 심리 등도 적절하게 녹아 있다. 지게의 '밀삐'(어깨에 걸어메는 끈) 등 소도구 등에 대한 고증도 정교하다. "인내와 장인 정신에 바치는 감동적 선물이다. 한국의 장인들이 명작을 만들기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치던 모습이 눈 앞에 펼쳐진다. 작품 속 인물들이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다." 미국의 권위 있는 잡지 '퍼블리셔스 위클리'가 보낸 이 작품에 대한 찬사다.

물론 이런 찬사에는 '동양적인 것'에 대한 이국 취향에서 오는 칭찬이기도 해서 이 작품이 국내에서도 똑같은 반향을 받을 것인지는 다소 의문이다. 할리우드 애니메이션에 중독된 우리 아이들은 외려 낯가림을 보일 법도 하다.

한편 린다 수 박은 현재 뉴욕에 살고 있다. 이 작품이 유명해지면서 강연요청이 잇따르고 있고, 그는 색동 한복차림으로 연단에 선다고 한다. 린다 수 박은 영국 런던대에서 영국 근대문학으로 석사학위를 받았고, 음식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기도 한다.

조우석 기자

wow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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