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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E ZEIT]北 '핵 고백' 두가지 해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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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김정일이 이끄는 북한의 공산 왕조 정권이 이제 핵무기까지 만든 것으로 보인다. 이미 핵무기 1~2개가 그의 무기고에 저장돼 있는 것 같다. 이게 사실이라면 북한은 아홉번째 핵강국이 된다.

게다가 북한은 한국과 일본, 나아가 미국 알래스카까지 사정권에 두는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제임스 켈리 미 특사에게 북한의 농축 우라늄 핵 프로그램을 시인함으로써 전세계가 흥분하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미국은 이를 94년 체결한 북·미 제네바 합의에 대한 분명한 위반으로 보고 있다. 당시 빌 클린턴 미 대통령은 영변 등지의 핵시설을 초토화 하려는 계획 일보직전까지 갔었다.

현재의 위기상황은 많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실제로 제네바 합의에 대한 위반이 있었나. 김정일은 무슨 속셈에서 핵개발을 시인했는가. 마지막으로 이라크에 전쟁으로 위협하는 미국이 왜 북한에는 부드러운 손을 내미는 이중잣대를 갖고 있는가.

북한은 과연 제네바 합의를 위반했는가. 당시 발표된 합의문 외에 추가 비밀합의 사항이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답을 내리기는 어렵다.당시 공개된 내용은 플루토늄 생산을 포함한 핵연구 프로그램이지만 이번에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농축 우라늄이다. 농축 우라늄도 금지된 것인가, 아니면 당시 이를 생각하지 못했나.

주한미군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면 이는 한반도 비핵화라는 일반적 목표의 위반은 아닌가. 러시아는 물론 한국의 많은 전문가들은 북한이 과연 전력소모가 많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위해 충분한 전력을 생산하고 있는지에 의문을 표시하고 있다. 북한의 핵개발 시인이 단지 엄포는 아닐까.

만약 엄포가 아니라면 북한의 핵개발 시인 동기는 두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는 미국에 대한 아주 냉정한 도전이라는 것이다. 즉 압력과 위협으로 주한미군 철수를 유도하려는 속셈이다. 한국과 미국이 대북 유화정책을 취하고 있음에도 북한은 기본적으로 '깡패국가 전략'을 견지하고 있다.

두번째는 대화와 개방으로 나아가려는 조치다. 실제 김정일은 중국에 있는 탈북자들이 한국으로 가는 것을 허용했고 6월 서해교전에 대해 한국측에 유감을 표명했다. 일본인 납치문제도 시인, 북·일 관계정상화의 기틀을 마련했다. 한마디로 고립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다.

결국 미국에 핵 시인을 한 것은 경수로 공사를 빨리 마치고 나아가 포괄적 경제 협력을 얻어 내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를 협박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협박적 대화 요구'가 더 정확하다. 새로운 대결을 시작하려는 게 아니다.미국도 두번째에 무게를 두고 있다.

미국이 이같은 해석을 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미국은 두개의 전선을 감내할 여력이 없다. 특히 서울이나 3만7천명의 주한 미군이 북한의 지상포의 사정권 내에 있어 위험이 크다. 또한 이 지역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이해관계는 중동보다 훨씬 직접적이어서 미국의 독자 행동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미국은 북한의 핵개발 동결 압력을 가하면서도 대화와 외교에 주력하고 있다. 북한을 붕괴시키기 보다는 변화시키는 것이 목표다. 이것이 합리적이다. 이제 부시 대통령은 세계가 자신의 단순한 선악구도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테지만 대신 골치 아픈 포커게임이 벌어질 것이다.

정리=유재식 베를린 특파원

jsy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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