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덕순 '의거歌'원문 발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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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우덕순(1876∼1950) 의사의 '의거가(義擧歌)'로 알려진 시의 원문이 발견됐다. 우덕순은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과 함께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저격하는 거사에 참가했던 독립운동가. 그의 '의거가'가 법정 속기록 등을 통해 외부에 알려지기는 했으나 그것은 일본어를 한국어로 번역한 것으로 원문이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의거가'의 원문은 일본 외무성 외교 사료관에 보관돼 있었다. 독립운동사 연구가인 신운용(외국어대 강사)씨는 최근 안중근과 우덕순 의사의 신문 결과를 종합 정리한 '이토 공작의 만주시찰 일건(一件)'(문서번호 425-245-4)이라는 제목의 이 문건을 찾아내 공개했다.

우의사가 '의거가'를 지은 것은 거사가 있기 3일 전인 23일 저녁. 거사를 위해 하얼빈에 도착한 안중근이 '장부가(丈夫歌)'를 짓고 우의사가 '의거가'로 화답하는 형식으로 거사의 결의를 거듭 다진 것으로 전해진다. 26일 오전 9시쯤 하얼빈 역에서 이토가 총격에 쓰러진 직후 안의사는 하얼빈역 현장에서, 우의사는 인근의 체가구 역에서 각각 체포돼 수사를 받게 되면서 '장부가'와 '의거가'의 실체가 처음 알려졌다.

안의사의 '장부가'는 일찍이 그 원문이 공개됐지만 우의사의 '의거가'는 당시 재판과정을 속기록 형태로 게재한 '만주일일신문'의 보도와 이를 묶어 만든 '안중근 사건 공판기록'등을 통해 일본어를 한글로 번역한 형식의 내용만 전해지는 수준에 불과했다.

이번에 발굴한 '의거가'의 내용은 이토를 죽이겠다는 거사 결의를 담았다는 점에서 알려진 것과 내용에 큰 차이는 없다. 그러나 당시 조선통감부 소속 통역인 소노키(園木)가 우의사가 부르는대로 한글로 받아 적은 것으로 추정되는 이 '의거가'는 "만나· 만나· 원슈 너를 만나"로 시작해 "용감역을 진발하야(용감한 역할을 진정으로 발휘하여) 국민의무 하여보세"로 끝을 맺고 있어 그 표현이 번역으로 전해진 것과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특히 우의사의 필명이 우우산인(禹又山人)으로 알려졌으나 이 자료에 따르면 '우슈산인'인 것으로 밝혀졌다. 자료를 검토한 박성수 교수(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근현대사)는 "이번 원문 자료의 발견은 거사의 다른 참가자인 유동하의 편지 등과 함께 당시 정황을 세밀하게 파악하는 데 중요한 기초자료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창호 학술전문기자

wjsan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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