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北核 과장론'놓고 정부 부처 일부 견해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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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북한 핵 문제를 둘러싸고 정부 내 부처 간, 한·미 간, 남북 간 미묘한 견해차가 나타나고 있다.

당초 지난 17일 부시 행정부가 "북한이 비밀 핵 개발 사실을 켈리 특사에게 시인했다"고 발표할 때만해도 초점은 북한에 대한 응징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 사회의 대북 공조에 맞춰졌다.

그러나 북한의 북·미 정상회담 제안(본지 10월 24일자 1면) 등 새로운 정황이 드러나면서 구체적인 북·미 간 논의 내용이 파악될 때까지 신중한 대응이 필요하다는 입장이 새롭게 대두하고 있다.

특히 김영남(金永南)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21일 장관급 회담 참석차 방북한 정세현(丁世鉉)통일부 장관과의 비공개 면담에서 "우리의 핵 개발이 미국에 의해 과장됐다"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져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일단 정부는 당국 대화 채널을 통해 파악한 북한의 해명 내용을 토대로 북핵 개발 파문의 충격파를 수습하려는 모습이다.

그러면서도 이런 움직임이 자칫 북핵 문제에 관한 한·미 간 이견으로 비춰질까 우려하는 표정이다. 한·미·일 정상회담(27일·멕시코)이 코앞에 닥친 때문이다.

청와대가 24일 일부 언론이 제기한 '미, 북핵 계획 과장 의혹'에 대해 "어떤 경우에도 북한 핵은 용납될 수 없으며 북핵 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 한·미는 긴밀한 공조를 통해 상호 협력하고 있다"고 진화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지만 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장관급 회담 이후 당국자들의 북핵 관련 언급은 미국 측의 발표 직후 나온 것과 상당한 뉘앙스 차이가 드러난다.

丁장관은 24일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전달하는 과정에서 거두절미하고 얘기가 건네져 그렇게 되지 않았나 한다"며 켈리 특사가 강석주(姜錫柱)북한 외무성 제1부상(副相)과의 회담 내용을 제대로 전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암시했다.

전날 임동원(林東源)대통령 외교안보통일특보는 미국 측이 북핵 개발 정보를 한·일 측에 건넨 시점을 지적하며 워싱턴 측이 모종의 의도를 가졌을 수 있음을 드러냈다.

이런 정부 내 움직임을 걱정스러워하는 시각도 있다.

한 당국자는 "우리 정부가 미국의 북핵 개발에 대한 우려를 부인하는 듯한 입장을 노골화하면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다"며 "부시 행정부가 북한 핵과 관련한 보다 결정적인 정보를 공개함으로써 대북 강경책의 당위성을 찾으려 할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또 정보 관계자도 "북한 핵에 대한 정보를 사실상 전적으로 미국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평양을 껴안는 듯한 모습만 보이는 건 곤란하다"고 했다.

결국 북한 핵을 둘러싼 진실 게임은 켈리 특사의 방북 협의에 대한 북한 측의 구체적인 입장 표명이 나와야 가닥이 잡힐 전망이지만 평양은 일주일 넘게 이 문제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고수석 기자

ssko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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