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핵개발 포기 가능한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지난 10월 초 북·미 대화 재개를 위해 평양을 방문한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차관보에게 북한측이 그들의 핵개발 계획을 시인했다는 보도는 우리를 '새로운 사실'에 놀라게 한다기 보다 오히려 그동안 '뻔한 사실'을 두고 속는 줄 알면서도 그들을 달래는 데만 열중해 온 우리 자신의 실망스러운 지난 몇 년을 되돌아보게 한다.

남북한은 1992년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통해 한반도 핵전쟁 위험을 제거하고 세계 평화와 안전에 기여할 것을 서로 다짐하면서 핵에너지를 오직 평화적 목적으로만 이용함은 물론 핵 재처리시설과 우라늄 농축시설을 보유하지 않을 것을 공식 선언했다. 북한은 또 94년 미국과 별도로 합의한 '제네바 핵합의'를 통해 모든 핵활동을 동결하는 대신 발전용 경수로 2기를 공급받기로 하여 현재 북한 내에서 경수로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 아래서 북한의 공개적인 핵개발 계획 시인과 "더 강력한 무기를 갖고 있다"는 등의 언동은 북한이 지금까지 핵문제와 관련, 한국이나 미국에 대해 또 국제적으로 행한 합의·약속·선언 등이 모두 거짓이었다는 사실을 자인한 격이 된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우리의 대북 경제지원 협력·경수로 제공·금강산 관광 등 모든 것이 결국 북한의 비밀 핵개발 계획을 직간접으로 도와주는 형국이었단 말인가.

여하튼 이번 북한의 핵개발 계획 시인은 우리의 대북 정책 추진환경에 상당한 변화를 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선 북한의 핵개발 시인 동기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과거 핵개발 실태를 털어놓으면서 국제사회의 양해와 지원을 도모하는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차원의 '핵 카드'를 구사하면서 체제유지와 실리획득을 동시에 추구하는 벼랑끝 전술의 반복인가, 이도 저도 아니라면 단순히 무모한 공갈인가. 무엇이 진실인지는 두고봐야겠지만 분명해 보이는 것은 북한 정권의 본질적 속성이 변하지 않는 한 과거의 진실을 밝히고 앞으로의 새로운 살 길을 도모한다는 가설(假設)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첫째, 이번 북한의 핵개발 시인은 놀랄 일도 아니고 불안에 떨어야 할 일도 아니라는 인식과 자세가 필요하다. 우리는 그동안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나 '제네바 핵합의'를 통해 그들이 비밀리에 추진하던 핵무기 개발 계획을 완전히 포기했다거나 또는 포기하리라고 믿어본 일이 없다. 단지 북한의 핵개발 실태를 규명하기 위해 노력해 왔을 뿐이다. 이제 북한이 제 입으로 핵개발 계획을 시인하고 나선 이상 우리 정부는 관련국들과 협력해 북한 핵개발 계획의 전면적 공개와 폐기를 강력히 촉구해 나가야 할 것이다. 지금은 중국과 러시아의 적극적인 협력도 가능할 것으로 본다.

둘째,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여부는 전적으로 북한이 스스로 시인한 핵개발을 포기하느냐 않느냐에 달려 있다. 현재 한·미 양국 정부는 모두 평화적 해결을 추구한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북한 스스로의 핵무기 개발 포기를 상정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앞으로의 모든 대북한 지원 및 협력 문제는 북한의 핵 및 대량살상무기 폐기 문제와 직접 연계하지 않으면 안될 상황이다. 또 반드시 연계해야 할 것이다.

셋째, 지난 6월 북한의 기습공격으로 발생한 서해교전과 그 후 그들이 보여준 부산 아시아경기 참가 등 여러가지 대남 유화 제스처는 북한 대남전략의 화전(和戰) 양면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따라서 앞으로 대북 정책은 화해 협력을 추진하되 불의의 도발사태에 철저히 대비해야 할 것이다. 북한체제의 투명성과 상호주의 원칙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