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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45>제103화人生은나그네길-< 49·끝 > 영원한 고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지난 14일엔 남서울골프장에서 열린 연예인 자선 골프대회에 다녀왔다. 한 골프용품 회사가 주관한 행사였다. 나는 원로 연예인 자격으로 시타(始打)를 했다. 동료나 후배들과 라운딩은 하지 않았지만, 오랜 만에 참 많은 사람을 만났다.

"요즘 쓰시는 이야기 잘 읽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가 나가면서 이 말이 인사처럼 돼 있는데, 그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동료들에게 덕담도 많이 들었지만 "글에 왜 내 이름은 안나오냐"는 애교 섞인 '협박'을 받기도 했다.

참가자 가운데는 탤런트 이순재·정혜선씨도 보였다. 가수로는 오기택·박일남·위키 리·김동자(김씨네 멤버)·정애리씨 등이 참가했다. 우리 사회에서 골프는 아직도 '귀족 스포츠'로 통하고 있어 골프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게 솔직히 부담스럽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골프 그 자체가 아니다. 이런 행사를 통해 사회에 봉사하는 연예인들의 마음가짐을 이야기 하고 싶다. 다시 말하면 팬들로부터 많은 사랑과 박수를 받은 만큼 어떤 형태로든 사회에 보답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수익금이 자선단체로 돌아가는 자선 골프대회는 바람직한 봉사의 한 형태가 아닌가 싶다.

연예인을 흔히 공인(公人)이라 부른다. 공인에게는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도덕과 자존심이 있다. 앞으로 사람들의 여가활동이 늘어나면서 연예인이 더욱 각광을 받을 것이고,그럴수록 연예인은 철저한 자기관리가 뒷받침돼야 한다.

나는 40여년간 가수 활동을 하면서 자존심을 스스로 훼손하지 않으려 무척 애썼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없다지만 어떻게 해서라도 먼지가 덜 나도록 노력은 했다. 그래서 나는 내 가수 인생에 결코 후회가 없다. 뜻하지 않게 정치라는 외도(外道)를 했지만,그 또한 가수 인생의 연장이었다고 생각한다.

서울 토박이인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 방학이 되면 고향으로 떠나던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시인 정지용이 '향수'에 읊었듯이 '넓은 들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즐대는…' 고향의 실체가 뚜렷하게 없었던 나에게 가요계는 영원한 마음의 고향이자 안식처였다. 잠시 동안의 정치를 청산하고 나는 내 고향으로 돌아왔으니,이곳에서 이제 여생을 정리할 것이다.

내가 뼈를 묻을 곳이니,선배로서 요즘의 가요계를 돌아보면 착잡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대체로 잘 굴러가고 있다지만,아직도 적잖은 부분에서 고쳐나가야 한다.

가장 안타까운 점은 대중가요의 지나친 상업화 바람이다. 예술이 돈으로 쉽게 환산되는 시대라고는 하지만, 노래를 만들어 유통하는 사람이나 부르는 사람이나, 그것을 매개하는 사람이나 모두 보이지 않은 기준이 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최근 사회를 떠들석하게 했던 방송과 가요계 관련 스캔들은 그런 '보이지 않는 원칙'이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가수로 국한해 말하면 매명(賣名)에 혹하지 않기를 바란다. 재즈라는 것을 예로 들면 이렇다. 재즈를 하는 사람들은 재즈가 매니어들을 위주로 소통되다보니 보다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그래서 상업화 바람에 휩쓸리게 되는데, 그 방법이 정직하거나 세련되지 못하면 재즈 그 자체의 고유성마저 잃게 된다. 그러면 재즈의 존재 이유도 없어지는 법이다.

이 시리즈를 마치는 마당에 너무나 무겁고 딱딱한 이야기를 하게 됐다. 뭔가 할 이야기가 많다는 것은 나이를 먹고 있다는 증거인데, 나도 예외는 아닌가 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팬들에게 사랑을 받은만큼 그들을 위해 뭔가를 돌려줘야할 때인데, 아직도 나는 제대로 답을 찾지 못하고 있으니 안타깝다. 지금까지 이 졸고를 읽어준 독자들에게 감사를 드리며, 7년 만에 팬들을 위해 준비한 '최희준의 가을밤 콘서트'(11월 매주 금·토 정동극장)가 조그만 위안이 되길 바란다.

정리=정재왈 기자 nicolao@joongang.co.kr

◇알림=21일부터 연재할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의 주인공은 전 국립문화재 연구소 소장 조유전씨 입니다. 유적 발굴에 얽힌 생생한 이야기를 전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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