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불안의 싹, 현대상선 의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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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현대상선 대출 의혹을 놓고 계좌추적을 하느니 못하느니 나날을 지새우는 사이에 자칫 나라 경제가 기우뚱거릴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현대상선·현대건설 등 '대북 지원 의혹설'에 직간접으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기업들의 자금 흐름에 이상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일례로 현대상선이 자동차 운송사업 부문을 파는 것은 대북 지원 의혹과 아무 관련이 없고 기업·은행 모두에 좋은 일인데도, 의혹이 불거진 이후 국내 금융기관들이 발을 빼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원매자인 스웨덴·노르웨이 기업이나 여기에 자금을 대는 시티 등 외국 금융기관들은 동요가 없는데, 애초 자기들을 꼭 끼워달라고 줄을 섰던 국내 금융기관들 중 일부는 없던 일로 하자고 돌아선 것이다. 현대건설도 아직은 심각하지 않지만 자금 조달에 적잖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이 기업들이 어떤 기업인가. 외환위기 이후 큰 대가를 치르고 살려놓은 기업들이다. 현대상선의 배가 세계 도처의 항구에서 압류당하고, 현대건설의 해외공사에 대한 클레임이 세계 도처에서 걸려오고, 은행들이 물려 넘어가는 일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제 대선을 앞둔 정쟁 속에서 의혹 공방을 질질 끌며 기업과 경제는 내팽개쳐도 좋다는 형국이 돼버렸다.

유일한 해법은 의혹을 하루 빨리 풀어버리는 것이다. 의혹이 풀려야 기업과 금융이 제기능을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선 당시 산업은행 총재였던 이근영 금감위원장부터 해임하고, 계좌추적을 통해 전모를 밝히는 수순에 바로 들어가야 마땅하다. 의혹 당사자가 금융 건전성을 감독하는 기관의 수장으로 앉아 있는 한 의혹 밝히기는 한치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 그러니 금융실명제의 법리 논쟁만 무성할 뿐 의혹을 규명하려는 의지는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 경제에는 불안 요인이 많다. 또 다른 불안요인이 더 커지기 전에 그 싹을 잘라내야 한다. 현대상선 의혹에서 시작된 자금 흐름의 이상이 바로 불안 요인의 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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