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열풍 속 수학은 뒷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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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66면

초등학교 4학년생인 윤 모(11ㆍ서울 H초등학교) 군은 학교에서 곧잘 영어를 섞어 말한다.

'eraser(지우개)','school(학교)'은 입에 붙어 있고 교사에 질문을 할 때도 영어가 절로 나올 때도 많다. 발음도 거의 원어민 수준이라 반 친구들은 물론 담임 교사 조차도 놀라곤 한다. 열심히 다니고 있는 영어학원 덕분이다. 이 학원에서는 원어민 교사가 가르쳐 주기도 한다.

하지만 수학실력은 반에서 너무 뒤진다. 구구단을 외우긴 하지만, 곱하기와 나누기를 어떻게 응용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 직사각형과 정사각형의 개념 구분도 모호하다. 윤 군의 수학실력은 초등학교 1학년 수준이다.

조기영어교육 열풍이 몰고 오고 있는 부작용이다.

한 때 학부모들은 수학을 필수로 생각했다. 수학을 못하면 대학가기도 어렵다고 했다. 그래서 학습지도 수학을 먼저 택했다. 그 다음 영어ㆍ국어였다.

그러나 올 들어 영어 학습 열풍이 불면서 수학은 뒷전으로 밀리는 분위기다. 영어교육에 수십 만 원을 쏟아 부으면서도 수학에 대한 투자는 미루는 경향이 짙다.

윤 군처럼 '영어 최고, 수학 수준미달'의 학생들이 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학습지 업계는 궁리 끝에 기존 학습지와는 개념을 달리하는 수학 교재를 새로 개발하고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대교는 최근 '사고력 수학'을 새로 출시했다. 수학적 사고력을 통해 합리적인 문제해결 능력 배양을 목표로 하는 신 개념 수학교재이다. 공간지각력, 문제 해결력, 추론력 등의 수학적 분석을 도와준다고 대교 관계자는 말한다.

한솔교육은 '신기한 수학나라'를 개편해 출시 중이다. 수학으로 놀고, 수학으로 생각하는 전문 수학 교육 프로그램이라고 회사 측은 소개한다. 단순히 계산만 반복하는 수업이 아니라 다양한 생활 속의 상황에서 문제를 풀어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총 1백42주의 프로그램으로 주 1회 수업을 한다.

웅진닷컴은 이 달 초 '웅진 씽크빅 수학 라인업'을 선보였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3단계 학습 관리 프로그램이다.

재능교육은 '스스로 수학'을 내놓고 있다. 문제 해결력은 물론 사고력ㆍ창의력까지 한번에 키워주는 원리 이해 학습 프로그램이라고 회사 측은 설명한다.

분류와 집합, 도형의 이해, 공간개념 인지, 수와 연산, 측정과 비교, 규칙성 배열 등 수학의 6가지 영역을 골고루 공부하게 해 탄탄하게 기초를 다져준다는 것이다.

재능교육 박귀근 이사는 "수학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시급하다. 마케팅 전략을 새로 수립, 시장회복에 나설 계획이다"고 말했다.

김민선

hpms4@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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