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 이동' 대치… 싸늘한 국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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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5일로 예정된 국회 대정부 질문은 전용학(田溶學)의원에 이어 소속 의원들의 적잖은 이탈 조짐에 격분한 민주당 측 거부로 무산됐다.

민주당과 자민련은 '민주주의 파괴''패륜 정치'라며 한나라당을 비난한 반면, 한나라당은 정권 초 30여명의 의원을 데려간 민주당을 겨냥,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고 맞서 격렬한 공방전이 벌어졌다. 민주당은 남은 대정부 질문도 보이콧하기로 입장을 정리, 국회 파행은 계속될 전망이다.

◇민주당=오전 열린 원내대책회의와 의총에서 보이콧 입장을 재확인했다.

한화갑(韓和甲)대표는 "한나라당이 민주주의 파괴와 독재로 가고 있다"며 "과반수를 넘겨도 계속 먹으면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 모양"이라고 말했다.

韓대표는 또 1998년 한나라당 의원들이 대거 민주당으로 이적했다는 주장에 대해 "당시엔 숫자를 늘려서라도 개혁을 추진하라는 여론이 있었지만 현재 한나라당의 영입은 단지 선거를 유리하게 만들기 위한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정균환(鄭均桓)총무도 "어제 한잠도 못잤다"며 "완전히 우리의 뒤통수를 치고 갔다"고 흥분했다.

이날 의총에서는 "이회창 후보는 의회민주주의 파괴에 대한 책임을 지고 후보직을 사퇴하고 즉각 정계에서 은퇴하라"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한나라당=당 수뇌부들은 오전 고위선대위에 참석, 의원 이적사태에 국회 거부로 맞선 민주당 측을 '적반하장'이라며 질타했다.

서청원(徐淸源)대표는 "과거처럼 협박·공갈로 의원을 30여명씩 빼가는 작태는 하지 않는다"며 "과거 잘못을 사과하기는커녕 국회부터 파장시키는 건 얼마나 부도덕한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공격했다.

이어 "두 의원이 자진해 들어온 만큼 우리 당은 도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은 14일 책임있는 제1당의 모습을 보이는 차원에서 단독으로라도 대정부 질문을 강행키로 했다가 이날 갑자기 전략을 바꿨다. 괜히 민주당을 자극할 필요가 없는 데다 여론에도 좋을 게 없다는 신중론에 밀린 탓이다. 결국 한나라당 의원들은 오전 10시부터 본회의장에서 민주당 의원들을 기다리다 11시15분쯤 해산했다.

◇자민련=예상됐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의원들은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당의 분열이 예상보다 빠르게 닥쳐왔다는 위기감 때문인 듯했다.

유운영(柳云永)대변인은 "인간적 신의도, 정치적 금도도 사라진 오늘의 패륜적 정치현실에 비통할 뿐"이라고 흥분했다.

체념 섞인 반응도 나왔다. 김학원(金學元)총무는 "어차피 갈 사람이 옮긴 게 뭐가 그리 대수냐"고 주장했고, 조부영(趙富英)부총재는 "이완구 의원이 자민련 당원이었느냐"고 했다.

남정호·서승욱 기자

nam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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