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田의원의 변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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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이회창 총재는 취임 초부터 총리 인준을 반대하는 등 정부·여당에 대해 사사건건 발목잡기와 흠집내기로 일관하는 속좁은 정치로 국정을 혼란에 빠트리고 국민의 걱정을 끼쳐왔다."(2001.8.31)

"원내 안정세력,국민의 신뢰를 받는 정당만이 정치안정을 이룰 수 있다. 한나라당과 이회창 후보의 집권을 통한 정치 안정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역사의 대세라고 확신한다."(2002.10.14)

완전히 상반된 내용의 이 두 문장은 놀랍게도 같은 정치인이 던진 말이다.

전자는 지난해 민주당 대변인이던 전용학 의원이 李총재 취임 3주년을 맞아 내놓은 논평의 한 대목이고, 후자는 田의원이 지난 14일 발표한 한나라당 입당성명서의 한 구절이다.

田의원은 민주당 대변인 시절 "김용환(金龍煥)·강창희(姜昌熙)의원의 한나라당 입당은 추악한 배신과 야합" "한나라당 장외집회는 이회창식 꼼수정치" "한나라당은 특권층 동맹" 등의 발언을 남겼다.

그래서 많은 국민은 田의원이 왜 갑자기 '속좁은 정치인'의 대선 승리에 백의종군하겠다는 것인지 어리둥절해 하고 있다.

정치인이 소신에 따라 당을 바꿀 수는 있다고 치자. 그러나 옮겨가는 당에 따라 소신이 바뀐다면 곤란하다.

더구나 田의원은 민주당 내에서도 '이인제 대세론'이 지배할 때는 이인제 측근이 됐고, '노풍(노무현 지지바람)'이 분 뒤에는 노무현 후보의 언론특보를 맡았으며, 노풍이 가라앉자 비노·반노세력의 '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에 들어가는 등 변신을 거듭해 왔다.

청양-홍성의 이완구(李完九)의원은 1998년 5월 "지역구 여론상 도저히 안되겠다"며 한나라당을 탈당해 자민련에 입당했다. 李의원은 거기에서 재선에 성공했으며 자민련 대변인과 원내총무를 지냈다. 그런 그가 "대통령 후보 없는 당에는 못 있겠다"며 다시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정치인으로서의 원칙과 소신보다는 자리에 연연한 것은 아닌지, "야당 정치인은 죽어도 못하겠다"는 '양지 지향성' 때문은 아닌지 묻고 싶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15일 "우리와 뜻을 같이 한다면 과거지사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조건을 붙이기는 했지만 사실상 세(勢) 확산을 위해서는 누구라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철새 정치인과 이를 수용하는 정당을 보는 국민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wormho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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