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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알뜰 상설매장 '플리마켓']품질은'명품' 값은 '중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7면

'소니 CD플레이어 5만원, 이탈리아제 치코 가죽구두 1만8천원, 남성용 스웨터 5천원…'.

최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2층 상설 매장에 문을 연 '플리마켓'의 가격 목록이다. 중고품을 사고파는 벼룩시장(flea market)을 뜻하는 플리마켓은 일본에선 '후리마'로 불리며 전국에 1천여 개의 체인점이 있을 정도로 성업 중이다.

옷에서부터 디지털 카메라·그릇 세트까지 품목도 다양해 프리마켓(free market)이라는 중의적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오래 쓰던 물건을 사고 팔던 기존의 우중충한 벼룩시장과 달리 새것과 다름없는 상품들을 깔끔하게 정돈된 상설 매장에서 파는 것이 플리마켓의 특징.

얼마 쓰지 않은 아기용품이나 아이디어 상품, 백화점 바겐세일과 홈쇼핑 등에서 충동 구매했다 내놓은 물건들이 주요 품목이다. 그래서 상품 중에는 아직 라벨도 떼지 않은 것들이 많다.

국내에서 1호로 코엑스에 생긴 플리마켓의 창업자는 일본 유학파 여성 3인방.

일본에서 공부를 하던 1990년대 초, 도쿄 시내에 있는 단골 플리마켓에서 만난 이들은 매주 각 지역의 플리마켓에 쇼핑을 다니면서 한국에 이를 도입하기로 결심했다. 새것과 같은 상품을 백화점의 10분의 1 가격으로 파는 전략이 한국에서도 통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3인방의 대표이자 가게의 사장인 나성민(31)씨는 "일본은 워낙 물가가 비싼 데다 몇 년째 불황이 계속되고 있어 이런 형태의 벼룩시장이 유행"이라며 "백화점에서 맘에 드는 제품을 고른 뒤 플리마켓에 가서 구입하는 알뜰 쇼핑족도 많다"고 말했다. 이들은 일본에서 주말마다 열리는 비상설 벼룩시장을 돌아다니며 물건을 사오기도 한다.

대부분 일본에서 생활하며 현지 상품 조달 책임을 맡고 있는 박주연(26·유학생)씨는 "얼마 전 사이마타현 세이부 돔에서 열린 벼룩시장에선 괜찮은 물건을 구하려고 오전 6시부터 줄을 서 기다렸다"며 주말마다 전국을 돌아다니느라 새까맣게 탄 얼굴을 웃어보였다.

또 다른 동업자인 김경희(32·유학생)씨도 한국의 가게에 보낼 상품을 구하느라 일본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다.

이 가게에는 우리 나라 중고품이나 일본 제품뿐 아니라 미국·프랑스·동남아·러시아 등의 벼룩시장에서 구입해온 물건들도 있다.

대학 시절 미술을 전공한 羅씨는 이탈리아 밀라노, 프랑스 파리,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 등 세계 각국에 유학 중인 친구들이 많아 이들을 통해 현지의 물건을 구해온다.

이들은 며칠 전 러시아에서 친구가 보내줬다는 두꺼운 털모자를 보여주며 "올 겨울 날씨가 추워지면 이 모자가 유행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했다.

또 일교차가 큰 요즘에는 이마에 붙이는 파스형 어린이 해열제인 '네쓰사마'가 대표적인 베스트 셀러로 강남 주부들 사이에 인기를 끌고 있다고 귀띔했다.

앞으로 체인점 운영을 목표로 하고 있는 羅씨는 "어느 나라건 경제 발전에 따라 물가가 오르기 때문에 합리적이고 실용적인 소비를 원하는 소비자들을 겨냥한 틈새시장인 벼룩시장이 활성화하게 마련"이라며 "전통적 개념과는 다른 새로운 벼룩시장을 가꾸어 나가는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김필규 기자

phil9@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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