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노벨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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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2년 전 바로 이맘 때 필자는 '노벨상도 변해야 한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요점은 두가지였다. 노벨상 시상은 학문적 원로대가들의 '연례 경로잔치'가 돼서는 안된다는 것이 첫째였다. 상아탑학자만이 아니고 정책입안가와 기업가·민간기업연구원·국제금융인 등 인류의 복지에 실질적으로 기여한 사람에게도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 그 둘째였다.

올해 노벨상 수상자 선정은 몇가지 신선한 충격을 우리 모두에게 안겼다. '무명(無名)'의 학사출신 일본 회사원에게 화학상이 수여된 것은 엄청난 파격(破格)이었다. 두 실험심리학 연구가에게 경제학상을 공동으로 준 것도 경제학계엔 충격이었다. 기초과학분야에서 3년 연속 4명의 수상으로 일본의 건재가 입증된 것은 '산업기술대국' 일본에 대한 의미있는 '재발견'이었다. 지미 카터 전(前)미국 대통령에게 평화상을 주면서 전쟁으로 치닫고 있는 현 부시 미국 대통령의 이라크 정책에 비판적인 정치적 메시지를 보낸 것도 주목할 만한 변화다.

노벨상의 변화는 2년 전 현존하는 최고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을 제쳐놓고 컴퓨터칩과 반도체구조 등 정보통신기술 기초분야 실용연구가 3명을 수상자로 선정할 때부터 감지됐었다. 잭 킬비가 텍사스 인스트루먼트에서 집적회로를 발명한 때가 1958년, 공동발명자인 로버트 노이스는 오래 전에 작고했다. 이들에 대한 뒤늦은 시상에 비판도 적지 않았다.

그로부터 '인류복리에 최대 공헌한 사람에게 상을 주라'는 노벨의 유지(遺志)는 실용적으로 해석되고, 앉아서 후보를 천거받던 자세에서 수상자의 적극 '발굴' 쪽으로 방향이 바뀐 것이다.

그 결과 인간의 실생활 응용에 직결되는 엔지니어링분야가 주목을 받고 기업의 제품제조 일선의 연구실과 '거리의 발명가'에게도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생체 고분자구조 분석 연구로 화학상을 받은 일본 시마즈제작소 다나카 고이치(田中耕一)주임연구원이 전형적인 '발굴' 케이스다.

올해 경제학상 역시 주류경제학계에는 생소한 실험경제학과 심리경제학의 두 개척자에게 주어졌다.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현실상황에서 경제주체의 행동은 합리적 선택이나 확률이론만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인간의 실제 경제행태에 경험과 심리적 요인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과학적 실험기법으로 규명하려 한 이들의 파이어니어 정신을 높이 산 것이다.

평화상을 주면서 시상당국이 정치적인 메시지를 은근히 흘리는 전례는 없지 않다. 소련의 반체제 물리학자 사하로프, 폴란드 자유노조지도자 바웬사,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에 대한 시상이 그러했다. 그러나 이번처럼 평화상위원회 의장이 직접 나서 부시 행정부의 정책을 비판한 경우는 없었다. 평화에 대한 시상당국의 적극적인 '현실개입'으로 읽힌다.

무엇보다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일본 기초과학의 도약과 그 내용이다. 노벨상은 곧 최고명문과 그 수재들의 전유물은 아니다. 물리학상을 받은 고시바 마사토시 도쿄대 명예교수는 '꼴찌졸업생'으로 자처한다. 더구나 일본의 노벨상 산실은 도쿄대가 아닌 교토대와 교토지역이다. 교토대는 도쿄대 같은 권위주의가 없고, 교세라·닌텐도·산요화학 등 첨단 기술기업들이 몰린 산학협동연구의 고장이다. 다나카를 배출한 시마즈제작소도 이 교토에 있다. 노벨상 배출자 수에 따라 대학 랭킹도 달라질 판이다. 연구에 미친 창의적 '괴짜'들이 연구실과 실험실에 밤낮없이 뒹굴 때 기술입국은 보장된다.

이공대생들이 도서관에서 고시공부에 매달리는 나라에서 노벨상 타령은 덧없는 공염불일 뿐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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