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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의 폭력에 카프카식 저항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헝가리 작가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임레 케르테스(Imre Kertsz)는 사회적 힘과 폭력이 개인의 종말을 강요하는 시대에 인간이 어떻게 살아남고 사유할 수 있는 지에 대해 천착해 온 작가다.

그의 작품은 항상 10대 시절에 겪었던 아우슈비츠의 체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 히틀러의 나치가 헝가리 유태인들을 수용소로 보내는 것에 충격을 받았던 그에게 대학살은 서유럽의 통상적인 역사 바깥에서 발생한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었다. 그는 유태인 대학살을 근대를 살아가는 인간이 빠질 수밖에 없는 타락의 극한적인 모습이라고 보았다.

이처럼 인간이 처한 부조리한 조건을 탐색해 온 케르테스는 국내에 한 권의 책도 번역되지 않았지만 독일을 위시해 서유럽권에서는 꽤 명성이 자자한 작가다. 그래서 올해 발표를 앞두고 주요 수상 후보로 외신에 거론되곤 했었던 것이다. 반면 헝가리 내에서는 69년작 『방문객』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죄르지 콘라드의 그늘에 가려 노벨상까지 기대하지는 못했던 작가다.

케르테스의 첫 소설 『운명은 없다(Fateless)』는 수용소에 끌려가지만 나치에 협조해 끝까지 살아남는 젊은이가 주인공이다. 작품의 주인공은 수용소의 현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수용소의 삶이 또 다른 일상과 별 차이가 없는 것처럼 느낀다. 주인공은 어린 아이 같은 눈으로 수용소의 생활이 부자연스럽다는 것도 알지 못함은 물론 이해하지도 못한다. 우리가 수용소에 관해 이미 알고 있는 해답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 작품의 장점은 이처럼 도덕적 재단이나 형이상학적 목소리를 강조하지 않는 데 있다. 이를 통해 케르테스는 산다는 건 순응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첫 소설에서 보여지는 작품세계는 헝가리 사람들이 공유하는 역사와 관련이 있다. 헝가리 마자르 민족은 아시아 계통으로 유럽을 차지하고 있던 게르만·슬라브·라틴족과는 완전히 다른 민족이다. 마자르족은 기존의 유럽 민족들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 순응할 수밖에 없는 슬픈 역사를 공유했다. 즉 13세기 몽고 지배를 비롯해 침략과 수탈의 역사로 점철돼 왔다. 게다가 1956년 반소(反蘇)운동의 실패로 수많은 지식인과 작가들이 망명을 떠나야 했다.

90년작인 『태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송가(Kaddish for a child not born)』에서도 그는 수용소에서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는 역설적인 감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를 통해 그는 사랑이야 말로 순응주의의 최고 단계며, 순응주의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생존하려고 하는 욕망에 사로잡히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후기로 갈수록 작가는 카프카 스타일로 사회주의 동유럽의 폐쇄 공포적인 상황을 그려냈다. 그러나 카프카와는 달리 성공할 가능성이 없더라도 비인간적인 체제에 맞서야 한다는 역설이 그의 문학에는 담겨 있다.

스웨덴 한림원이 "타협을 거부하는 케레테스의 입장은 그의 문체에서 명백하게 드러난다. 그것은 울창한 가시나무 산울타리에서 의심하지 않는 방문객을 위해 촘촘히 박혀있는 가시들을 연상케 한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유진일 <한국 외국어대 헝가리어과 강사·부다페스트국립대 문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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