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후보에 건넨 어음번호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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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0일 정치분야 대정부 질문에서 "부천시 범박동 재개발사건 의혹과 관련있는 기양건설 김병량 회장이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와 부인 한인옥(韓仁玉)씨에게 최소한 80억원의 로비자금을 제공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논란이 일었다.

민주당 전갑길(全甲吉)의원은 "金회장은 부인 장순례씨와 한인옥씨가 친척인 점을 이용, 재개발 사업자가 됐으며 그 대가로 1997년 대선 직전 李후보 부부와 측근들에게 정치자금을 건넸다"고 주장했다.

全의원은 "기양건설이 5백억원 이상의 비자금을 조성, 李후보 측과 정치권에 대선자금으로 제공하는 바람에 부실이 발생해 부도가 났고, 이로 인해 공적자금이 투입됐다"고 주장했다. 全의원 주장은 그동안 李후보의 '호화빌라 소유 의혹'을 추적해온 민주당이 상당기간에 걸쳐 자료를 수집해온 내용이다.

◇어음번호 공개=全의원은 "복수의 제보자들로부터 받은 내용"이라고 근거를 댔다. 그는 "97년 6월부터 12월까지 金회장 부인 장순례씨를 통해 현금 5천만원을 비롯, 수십억원을 李후보 부부에게 줬다"며 주택은행 서여의도 지점이 발행한 네종류의 어음번호를 공개했다.

또 "김병량씨의 로비창구였던 시온학원 이청환 사장이 기양건설 측에 국민은행 105-2101031-908 계좌(예금주 박윤명)로 58억여원을 보내달라고 요청한 팩스문건이 있다"며 "이 계좌를 추적하면 李후보 부부와 측근 H·J모 의원, 경남 출신 구(舊)실세 K모 의원 등에게 제공된 일체의 비자금 내역이 밝혀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全의원은 "경리직원을 시켜 은행에서 돈을 인출한 뒤 수십억원의 돈을 금고에 1주일간 보관했다가 밤늦게 포장해 은행용 현금마대 2개에 5억원씩을 넣어 옮겼다"고 전달경로를 주장했다.

全의원은 그러나 돈이 전달된 시점과 장소 등에 대해선 설명하지 않았다. "구체적으로 밝힐 경우 제보자의 신분이 드러날 위험이 있다"는 이유를 댔다. 그러면서 "한인옥씨와 李후보 측근에게 전달되는 장면을 목격한 사람이 있으며 김병량씨가 직접 李후보에게 돈을 줬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는 진술도 있다"고 말했다.

◇"당시엔 야당 총재"=한나라당은 펄쩍 뛰었다.

엄호성(嚴虎聲)의원은 "기양건설엔 공적자금이 투입되지 않았고 범박동 인허가가 난 98년 당시 李후보는 탄압받던 야당 총재였다"고 반박했다.

이주영(李柱榮)의원은 "당시 인허가권자는 모두 민주당 사람이었다"며 "범박동 비리의 핵심은 박지원·권노갑·김홍일 3인방"이라고 주장했다.

김문수(金文洙)의원도 "로비가 있었다면 핵심 대상은 박지원 비서실장"이라며 "기양건설은 자본금이 3억원에 불과하고 직원도 없는 페이퍼 컴퍼니(유령회사)인데, 누구한테 몇백억원을 줬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한편 全의원은 "張씨의 큰어머니 한상희씨와 한인옥씨가 8촌 안팎의 친척"이라고 주장했으나 한나라당은 "친인척이 아니다"고 부인했다.

이정민 기자

jm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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