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말 北해군 두차례 NLL 넘었을 때 모든 정보부대 '단순침범' 결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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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북한의 서해 도발 가능성을 김동신(金東信) 전 국방장관이 축소, 은폐토록 지시했다는 파문과 관련해 국방부 특별조사단(단장 金勝廣 육군중장)의 조사가 진행되면서 차츰 진상이 밝혀지고 있다. 현재까지 밝혀진 새로운 사실은 한철용(韓哲鏞·소장) 전 5679부대장이 북한 도발 가능성을 지적한 정보보고서를 수정토록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지난 6월 14일 이후 정보본부 산하 모든 정보부대에서 생산한 보고서에는 뒤이어 27,28일 두 차례 계속된 북한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침범 의도를 '단순침범'으로 판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같은 사실은 당시 우리 군의 대북 정보판단이 지나치게 단순화돼 적절한 판단이 이뤄지지 못했음을 시사하고 있다.

◇삭제된 내용 무엇인가=지난 4일 국방부 국감에서 韓소장은 "5679부대가 지난 6월 13일 NLL 침범 의도와 관련해 ▶북 해군의 전투검열 판정과 관련된 침범▶월드컵 및 국회의원 재·보선과 관련한 한국 내 긴장 고조 의도 배제 불가▶우리 해군 작전활동 탐지 의도 중 하나일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의 정보보고서를 올렸으나 金전장관이 2,3번째 항목을 삭제해 전파하라고 지시했느냐"는 한나라당 박세환(朴世煥)의원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변했다.

그 뒤 韓소장은 5679부대에서 정보본부로 파견 근무 중인 尹모 대령이 작성한 '경위서'를 공개하면서 金전장관이 수정지시를 한 것으로 강력히 주장했다.

그러나 특조단이 5679부대의 정보보고서와 정보본부의 블랙 북(일일 대북 정보보고서) 등에 대한 조사를 실시한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6월 14일 정형진(丁亨鎭·준장)정보융합실장이 金전장관에게 보고한 것은 5679부대 것이 아닌 정보본부가 작성한 블랙 북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블랙 북에는 북한 경비정의 NLL 침범 의도를 ▶단순침범 가능성▶북 해군의 판정검열 관련 가능성▶우리 해군의 대응태세 시험 가능성 등 세 가지로 분석해 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무력도발 가능성을 직접 경고하는 분석은 포함돼 있지 않았다고 한다.

문제는 金전장관의 지시 내용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는지를 밝혀내는 것. 과연 金전장관이 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축소했는지 여부를 판단할 근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대목에 대해서는 아직 관계자들의 진술이 엇갈리고 있다.

丁실장은 특조단 조사에서 "장관 보고 이후 5679부대에서 파견돼 있는 尹대령을 불러 장관 보고 이전에 5679부대에 배포한 정보본부 블랙 북 내용 중 2,3번째 항목을 삭제하라고 말했으나, 5679부대의 보고서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尹대령은 "丁실장이 블랙 북 외에도 5679부대가 정보본부에 제출했던 정보보고서도 수정하라고 지시해 부대에 연락했다"고 진술하고 있다.

결국 丁실장의 지시 내용을 尹대령이 오해했는지, 丁실장이 장관의 지시를 잘못 전달했는지, 丁실장과 尹대령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거짓진술을 하고 있는지 등이 가려져야 金전장관의 북한 도발 가능성 축소 여부가 밝혀질 수 있다.

◇오직 '단순침범'=서해교전 직전 잇따라 북한 경비정이 NLL을 침범한 6월 27일과 28일에도 5679부대 정보보고서의 종합판단은 '단순침범'이다.

한철용 전 5679부대장이 "대북 통신감청을 통해 입수한 결정적 특수첩보(SI)를 보고했다"는 27일의 이 부대 정보보고서도 종합판단은 역시 '단순침범'으로 결론짓고 있다.

또 합참 정보본부가 5679부대의 통신정보와 정보사령부의 영상정보, 해외무관들의 인적정보 등을 종합해 만든 '블랙 북'도 단순침범으로만 판정했다.

이처럼 정보본부와 일선 정보부대가 천편일률적으로 단순침범이라고 결론을 내린 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일 것으로 군 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우선 북한의 무력 도발을 암시할 결정적 정보가 입수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韓소장은 결정적 내용의 SI가 있었으나 정보본부에서 이를 묵살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韓소장 주장은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일 뿐 27일 SI는 결정적 내용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한 목소리로 단순침범 결론을 내린 게 6월 14일 삭제 파문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풀이한다. 한 군 관계자는 "6월 14일 정보본부의 블랙 북이 장관 결재를 받은 뒤 수정된 것을 안 정보 관계자들이 눈치를 보느라 알아서 단순침범으로 결론을 내렸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철희 기자

ch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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