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아스라한 고전들 재출간돼 만나니 흐뭇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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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청소년들에게 문학 작품만 읽혀서는 안된다. 백번 지당한 말씀이다. 과학이나 역사·사회·예술과 같은 다양한 분야의 책읽기가 꼭 필요한 시절이 바로 청소년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껏해야 게임 매뉴얼이나 컴퓨터 프로그램 서적, 지하철에서 무료로 나눠 주는 신문이나 겨우 손에 들고 있는 청소년들을 보면 오히려 문학 작품만이라도 우직하게 권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문학은 삶을 담는 언어 예술. 따라서 자기 삶의 밑그림을 크게 그리면서 향기와 무늬를 담고 새기는 청소년기에 만난 문학 작품은 푸른 불꽃들에게 평생에 걸쳐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친다. 분명히 여러분에게도 그런 문학 작품들이 있으리라. 내가 최근에 다시 출간된 『얄개전』(조흔파, 아이필드)과 『남궁 동자』(최요안,아이필드)를 무척 반기는 것도 같은 연유에서다.

흠, 어른이 되어 다시 읽으니까 예전 같지는 않겠지. 이렇게 접어 주고 시작한 책읽기가 급기야 쿡쿡거리다 박수를 치면서 웃게 되었다. 그 모습에 중 1 아들 녀석이 슬그머니 책을 집어 들었고 눈깜짝할 사이에 부전자전! 『얄개전』이 다시 나왔다고? 하시며 끼어드신 할아버지께 책을 넘겨 드리니 또 다시 박장대소에 손전조전(孫傳傳)? 만 하루가 안 되는 동안에 삼대가 웃고 즐기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나는 『얄개전』과 『남궁 동자』 같은 책들에서 유머와 위트, 내러티브를 배웠던 것이 아닐까. 그만큼 입시 지옥의 학교를 무대로 따뜻한 시선으로 포복절도하게 이야기를 풀어내는 솜씨가 놀랍기만 하다. 요즘 작가들은 청소년들을 위해 무엇을 쓰고 있을까.

역시 얼마 전에 다시 출간된 이오덕 선생님의 『일하는 아이들』(보리)과 권정생님의 『몽실 언니』(창작과비평사)도 값진 책들이다. 바람직한 문학 교육에 대해 크게 길트기를 한 『일하는 아이들』을 다시 읽는 소회가 각별하다. 『몽실 언니』는 이번에 성인용 장정으로 또 출간됐다. (당연하다. 『몽실 언니』는 성인 문학이다!)

고교 시절에 읽었던 『나를 운디드 니에 묻어주오』(디 브라운, 나무심는사람)도 다시 출간돼 기쁘다. 미국사에서 가려졌던 인디언 수난상을 그린 책. 그들의 참혹한 멸망사를 읽다가 어느새 약자의 슬픔에 귀 기울이는 자세를 익히게 된 책이다. 당시에 같이 읽었던 책인 알렉스 헤일리의 『말콤 엑스』는 아쉽게도 다시 출간되지 않고 있다. 여기에 '제재(題材)'를 중심으로 청소년들이 읽을 만한 기존 문학 작품들을 참신하게 뽑아 놓은 제재문학선 시리즈(문학과지성사)도 최근 발간되고 있다. 가족(최시한 엮음)과 여성(김경수 엮음), 분단(이명희 엮음)이라는 굵직하면서도 생활에 밀착한 제재의 작품들을 잘 뽑아 적절한 순서로 묶었으니 꼭 읽어 보시라. 특히 분단의 경우 예상과 달리 단행본들이 그다지 많지 않으므로 이들 짧은 작품 모음은 더욱 귀중하다. (다만 생각할 점들과 해설들이 좀더 풍부했으면 싶다.)

훌륭한 문학 작품을 읽다보면 어느새 훌쩍 영혼의 키가 커진다. 그러니 푸른 불꽃들이여, 문학 작품을 미친 듯이 읽으라. 그 속에 있는 더 깊은 너를 찾을 수 있으리니 스스로를 다시, 새롭게 읽을 수 있을 것. 책이 바로 너다!

'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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