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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국회 옥죄는 '정당굴레' 벗겨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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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국회가 정당정치의 구속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동안 국회는 정당간 정치투쟁의 마당이었다. 여대야소 상황에서는 일방적인 독주로, 여소야대 상황에서는 무한대립으로 점철됐다.

국회를 타협과 설득의 장으로 이해한 것이 아니라 통법부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여당 의원들을 거수기로 만들었다. 야당도 이에 맞서 '상대의 불행은 나의 행복'이라는 제로섬 게임으로 극한 투쟁을 벌였다. 따라서 국회를 정당의 지배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것이야말로 국회를 정상화하고 대통령과 국회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길이다.

국회와 관련해 여러가지 개혁 조치들이 필요하지만 이것도 모두 국회가 정당의 지배로부터 벗어날 때 제대로 실현될 수 있다. 물론 국회가 정당 지배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요즘 서서히 움트고 있는 정당 내부의 민주화에 달려 있다. 정당이 적절하게 민주화된다면 의원들의 자율성은 회복될 것이고, 이는 국회의 자율성 회복으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대통령이 효과적인 정책 추진을 통해 성공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권한과 청와대의 기능을 조정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민주화된 체제에서 대통령이 성공적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데에 꼭 필요한 것이 국회와의 생산적인 파트너십이다.

흔히 우리는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서는 잠자는 국회, 팔짱을 끼고 있는 국회를 생각하기 쉽지만 오히려 강화되고 투명한 국회가 대통령의 성공에 긴요한 요소다.

우리 사회의 민주화로 이제 대통령이 국회와 시민들을 우회해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더 이상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충분한 능력과 권한을 갖추고 대통령의 정책을 책임있게 견제할 수 있는 국회가 오히려 정책의 정당성과 효율성을 높여줄 수 있다.

그러나 우리 국회는 정부의 한 축으로서 역할을 정상적으로 감당하기에는 턱없이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다. 인력의 질과 규모, 운영 방식, 정책의 전문성 등에서 균형의 추는 너무나도 청와대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하지만 대통령과 참모들이 일하는 국회를 만들겠다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데에는 적지 않은 위험이 따른다. 과거의 국회개혁·정치개혁 시도들이 대부분 인위적인 정계개편을 위한 정지작업으로 전락한 쓰라린 경험이 기억에 생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회개혁의 주체는 국회이고 정당개혁의 주체는 정당이어야 한다는 자세가 모든 개혁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

◇정책 파트너로서의 국회를 위한 정책 제안=국회가 대통령과 더불어 정책을 논의하는 파트너가 되기 위해서는 국회의 정책적 능력과 권한이 좀더 강화돼야 한다.

그러나 신장되는 권한에 걸맞은 책임과 투명성이 제고돼야 한다. 국회의 권한만 강화되고 그에 걸맞은 책임이 지워지지 않는다면 요즘과 같은 대통령과 국회의 무한 대립이라는 구태는 반복되고 정책은 실종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 늘어난 권한과 책임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국회가 정당정치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국회의 정책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무엇보다 인적 자원을 강화해야 한다. 미국의 의원들은 수천명의 상근 직원·연구원들이 일하고 있는 국회조사연구처(Congressional Research Service)에서 제공하는 정책과 관련된 정보, 연구 결과의 지원을 받는다. 상원의원들은 30∼40명에 이르는 정책보좌관들의 보좌를 받으며 법안을 제안하고 정부의 정책을 감시한다. 우리 국회도 의원들의 정책능력을 강화할 거대한 싱크탱크가 필요하다.

감사원을 국회에 이관시켜 국회는 감사원의 회계감사를 통해 예산을 심의하고, 그 결과를 평가할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럴 경우 국회 국정감사 및 조사권은 폐지한다. 감사원을 국회로 보내지 않을 경우는 최소한 재적의원 3분의1로 국정감사 및 조사가 이뤄질 수 있게 해야 한다.

국회가 법안을 발의하고 정부 정책을 감독하는 절차를 좀더 용이하게 해야 한다. 예산결산위원회를 상설하고 의안발의, 정부 예산안 수정에 필요한 정족수를 폐지하거나 축소해야 한다.

미국에서처럼 국회 안에 거대한 싱크탱크가 여러 개 있어야 한다. 현재의 법제실이나 예산정책실은 전문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늘어나는 권한에 걸맞게 국회의 활동에 대한 감시가 강화되고 투명성이 제고돼야 한다. 국회 본회의·소위원회의 회의록뿐 아니라 의원들의 표결 기록까지 전부 공개하고, 모든 국회 내의 일정은 방송을 통해 생중계함으로써 시민과 시민단체들이 철저하게 국회의 활동을 감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회 내 윤리위원회의 권한과 인력이 보강돼야 하고, 의원들과 이해관계 당사자들의 유착을 막기 위한 국회 로비등록법이 제정돼야 한다.

정당의 총재 및 그 측근에 의해 국회가 지배되는 사태는 없어야 한다. 16대 후반기 국회에서와 같이 국회의장뿐 아니라 모든 상임위원회의 장을 의원들이 자유롭게 선출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모든 의사일정을 교섭단체 대표들간의 협의를 통해 진행하는 현재의 방식도 폐지돼야 한다.

◇EAI프로젝트 참여 교수=박세일(朴世逸·서울대·위원장) 김병국(金炳局·고려대·간사) 김판석(金判錫·연세대) 모종린(牟鍾璘·연세대) 박재완(朴宰完·성균관대) 염재호(廉載鎬·고려대) 이홍규(李弘圭·한국정보통신대) 장훈(張勳·중앙대) 정종섭(鄭宗燮·서울대) 최병선(崔炳善·서울대) 황성돈(黃聖敦·외국어대)교수

◇토론 참석자=강경식(姜慶植·전 대통령비서실장) 강봉균(康奉均·전 재경부장관) 김경원(金瓊元·사회과학원장) 김영수(金榮秀·전 문화체육부장관) 김정렴(金正濂·전 대통령비서실장) 김충남(金忠男·전 대통령사정비서관) 노재봉(盧在鳳·전 총리) 박철언(朴哲彦·전 정무장관) 사공일(司空壹·전 재무부장관) 이종찬(李鍾贊·전 국정원장) 이홍구(李洪九·전 총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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