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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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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0면

영화 '흑인 오르페'는 영화 못지 않게 영화음악도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영화음악은 브라질음악을 처음으로 서구에 알린 역사적인 명반이다. '보사노바의 성전(聖典)'으로 추앙 받는 사운드트랙에는 안토니우 카를로스 조빔(1927∼94)·루이즈 본파(1922∼2002)·조앙 지우베르투가 참여했는데, 이들은 1960년대 초반 세계를 보사노바 열풍으로 이끌었던 장본인들이자 브라질음악을 세계화시킨 1세대다.

브라질은 양·질 모든 면에서 음악강국이다. 브라질 현대음악의 뿌리가 된 '쇼루'를 비롯해, 삼바·보사노바·람바다, 그리고 아마존강 유역의 원주민음악까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브라질음악을 이해하는 데 있어 또 하나 중요한 건 브라질 북동부의 바이아주(州)다.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대다수 흑인 노예들이 뿌리를 내린 이 지역은 '브라질의 아프리카'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다. 바이아의 원초적인 아프리카 계열의 리듬은 지금까지 브라질음악의 '젖줄' 역할을 하고 있다.

싱어 송 라이터이자 시인·영화제작자·사회운동가로 활동 중인 카이타누 벨로주는 42년 그 바이아주에서 태어났다. 대학생 시절 군부독재가 시작되자 그는 노래를 통해 항거하기 시작했다. 군부에 대한 야유와 조롱이 담긴 그의 노래 '트로피칼리아'는 브라질 민주화세대의 찬가가 됐고, 벨로주는 곧 투옥 당한 뒤 영국으로 추방됐다. 이후 각 나라의 여러 음악을 두루 섭렵한 벨로주는 그에 걸맞은 다양한 음악적 실험을 거듭해 왔다. 그의 이런 행보는 '브라질 대중문화계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는 극찬으로 이어졌다.

99년에 영화와 함께 리메이크된 '오르페'(워너 클래식)의 사운드트랙에는 기존의 곡들과 벨로주가 새롭게 만든 곡들이 적절하게 섞여 있다. 포스트 보사노바 세대의 선두주자인 그가 고전의 재해석을 통해 선배 뮤지션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는 것이다. 첫곡 '우 엔레두 지 오르페우(오르페의 줄거리)'는 삼바스쿨 뮤지션들의 웅장하면서도 원초적인 타악기연주, 카바킹유(4현 작은 기타)를 비롯한 전통악기들의 어울림, 여기에 뜀박질을 하듯 숨가쁘게 쏟아지는 포르투갈어 랩을 통해 오르페가 완전히 새롭게 부활했음을 선언한다. 예쁘장하고 아기자기한 카바킹유 연주를 바탕으로 흐르는 '칸치쿠 아 나투레자 프리마베라(봄을 찬양하며)'는 무척 낭만적인 노래로, 모든 것이 잘 될 것만 같은 희망을 전한다. 이어지는 불후의 명곡 '망양 지 카니발(카니발의 아침)'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오르페와 에우리디케의 사랑을 암시하듯 서글프게 흐른다. 이 노래와 함께 또 하나의 명곡인 '아 펠리시다지(행복)', 벨로주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일품인 '시 토도스 포셍 이과이스 아 보세(모든 사람들이 당신과 같다면)'도 빼놓을 수 없다. 브라질음악의 매력과 벨로주의 저력이 공존하는 음반이다.

<대중음악평론가·mbc fm '송기철의 월드뮤직' d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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