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 동물들은 지금도 울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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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원제는 '(멸종위기 동물을 볼)마지막 기회'(Last Chance to See), 책을 알리는 광고문구는 "…지적(知的) 오디세이", 외국신문의 서평은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들을 구하기 위한 영웅적 노력…경이롭다"인 책에 쉽게 손이 갈까? 그럼 이런 내용이 담겼다면 어떨까?

독사가 우글대는 섬을 찾아가야 하는 저자가 전문가와 상담후 묻는다. "독있는 동물 가운데 좋아하는 게 있나요?"

잠시 창밖을 바라보던 박사가 대답한다.

"있었죠. 하지만 그 여자는 날 떠나갔어요."

묵직한 주제를 나타내는 제목이나 광고카피, 서평으로 무장(?)했지만 읽어보면 의외로 재미있고 유익한 책이 있다. 이 책이 바로 그렇다. 잡지·방송의 의뢰를 받은 작가와 동물학자가 1985년과 88년 두 차례에 걸쳐 세계 각지의 멸종위기에 놓인 동물들을 만나러 다닌 답사기인데 일단 재미있다.

인간이 섬에 발을 들여 놓기 시작한 후 재앙을 만난 마다가스카르손가락원숭이, 22마리밖에 남지 않은 콩고민주공화국 북부 흰코뿔소, 모리셔스섬의 로드리게스과일먹이박쥐와 모리셔스황조롱이들이 처한 생존위기가 생생하게 그려진다. 길이가 3.6m가 넘으면서도 관광객의 놀림감으로 전락한 인도네시아 코모도섬의 왕도마뱀을 처음 만나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미끼로 가져 간 닭을 잡아먹은 왕도마뱀은 일행을 멀뚱히 쳐다보고, 방금 산 생명을 없애고도 태연한 그 태도에 마음이 불편해진 저자 일행은 도망간다. 그리곤 "녀석은 공포나 죄책감, 부끄러움, 추함 따위에 대해 알지 못한다.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죄를 지으며 수치스런 짓을 하는 동물인 우리 인간이 녀석에게 모든 것을 뒤집어씌우려 했을 뿐이다"고 깨닫는다.

일종의 생태보고서로 마구잡이 개발과 남획, 기업의 횡포와 정부의 무관심을 증명하는 온갖 숫자로 가득 차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물론 숫자가 나오긴 한다. 1년에 약 1천종의 동·식물이 지구상에서 사라진단다.

세계자연모니터링센터(WCMC)의 예측에 따르면 수년 내 멸종이 예상되는 동·식물이 3만1천5백여종에 이른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암울하고 안타까운 예상이다.

그러나 이 책은 심각해 할 여유를 주지 않는다. 답사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우스꽝스런 행태, 그들과 겪는 부대낌이 쉴새없이 웃음을 자아낸다.

손으로 작동되는 클러치를 단 자동차나 계기판의 절반이 작동되지 않는 비행기를 탄 기분, 입국했던 공항으로 출국하라며 다른 공항에서의 비행기 탑승을 막는 아프리카 관료 등 모두 이 책의 주제를 잠시 잊게 하는 대목들이다.

무엇보다 저자의 낙천적이고 천연덕스런 말투가 읽는 재미를 더한다.

"새벽에 수탉 때문에 잠을 깨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수탉들이 새벽이 언제인지 헷갈려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영장류에서 가장 성공하고 부자가 된 일족으로, 우리보다 덜 성공한 고릴라같은 친척들을 어찌 되었든 보살펴야 한다." 경쾌하고 익살스런 글솜씨는 진지한 소재를 다룬 책이면서도 한번 들면 결코 놓을 수 없게 만드는 흡인력을 자랑한다. 책의 주저자인 애덤스가 '히치하이커'시리즈로 유명한 코믹SF작가라는 점이 새삼 실감난다.

저자들은, 웃다 보니 "그래, 동물들이 멸종한다는데 그게 어떻단 얘기냐?"란 생각이 들었을 독자들을 위해 책 말미에 답을 달았다. "모든 동·식물은 생태계에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일부분이다. 그들이 없다면 이 세상은 좀더 비참하고 쓸쓸해진다"라고.

김성희 기자 jaej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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