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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초석 될까(下): 한반도 대화조성 기폭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북한의 '신의주 특구' 모험이 한반도 평화정착에 반석(盤石)으로 자리할 수 있을까.

신의주 특별행정구의 초대 장관에 오른 양빈(楊斌)은 성공을 장담하고 있지만, 평양 측으로부터는 아직 제대로 된 목소리가 나오지 않고 있다.

초유의 자본주의 개방 실험에 북한 권력의 핵심층엔 엄청난 긴장감도 배어 있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장밋빛 청사진에도 불구하고 신의주 특구의 미래는 아직 불투명한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개방·개혁과 남북관계, 대미·대일 관계개선을 위한 프로젝트는 이미 속도가 붙었다. 여기에 신의주는 기폭제가 되고 있다.

올 상반기까지 중국·러시아와의 전통적인 관계를 복원하고 확고히 다지는 데 주력한 평양 측은 7월 대내적인 경제개혁 조치를 시작으로 자신감을 보이기 시작했다.

지난 8월 7차 남북 장관급 회담을 시작으로 남북관계에도 불이 붙었다.

경협추진위를 주축으로 ▶철도·도로 연결▶쌀 차관지원▶금강산 육로관광▶개성공단 건설 같은 경제문제가 핵이 됐다. 철도 연결을 위한 비무장지대(DMZ) 내 지뢰제거 작업이 시작됐고, 남북 군사당국간의 직통전화가 개설되는 등 군사긴장 완화를 위한 토대도 마련됐다.

지난 17일 북·일 정상회담은 북한이 변화된 대외 개방정책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변곡점이 됐다.

다음달 3일 이뤄질 제임스 켈리 미 대북특사를 맞아 金위원장이 어떤 태도를 보일지는 향후 한반도 정세를 판가름지을 분수령이라 할 수 있다.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WMD)와 테러문제에 대한 입장 변화가 관건이다.

이미 2003년으로 끝나는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 유예(모라토리엄) 기한을 연장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金위원장이 국제사회에 달라진 모습을 보이기 위한 깜짝쇼를 벌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반도 주변 4강들의 힘겨루기도 기세를 올리고 있다. 북·일 정상회담을 계기로 일본의 대북 발언권이 높아지는 등 접근속도를 둘러싼 미묘한 기류변화도 감지된다.

6월 말 서해교전 등으로 미뤄진 부시 행정부의 대북 특사 파견이 다시 날짜를 잡게 된 과정은 이를 잘 보여준다.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해온 워싱턴이 특사를 파견키로 마음을 바꾼 것은 지난 22일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양국 정상회담과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의 한반도 평화선언 등에 압박받은 것이란 분석이다.

남북한과 미·일·중·러가 참여하는 6자 회담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그동안 한반도 문제 논의에서 소외됐던 러시아의 입김이 되살아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바야흐로 한반도를 둘러싸고 얽혀 있는 주변국의 이해관계가 저마다의 이익 챙기기를 위해 새로운 질서를 도모하는 형국이 됐다.

이영종 기자 yj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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