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29>제103화人生은나그네길: 33.가수 친목단체 '매미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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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1960년대 말 '매미회'라는 게 있었다. 당시 활동이 왕성한 가수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친목 단체였다. 내가 초대 회장을 맡았는데 회원들은 월례 모임을 통해 우의를 다졌다.

멤버들은 화려했다. 나를 비롯해 현미·한명숙·이금희·박재란·포 클로버(박형준·유주용·위키 리)·김상국·김상희·이미자·박상규·조영남, 그리고 블루벨스의 김천악·장세용·박일호,이시스터스의 김천숙·김명자 등이 단골이었다.

이 단체를 만들게 된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서울은 물론 지방 각지를 바삐 돌다보면 가수들의 생활이라는 게 거의 혼자나 다름없었다. 각자 따로 놀다 보니 공통의 고민거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적었다. 무리를 해서라도 친목을 도모하는 구실이 필요했다. 그래서 결실을 보게 된 것이 바로 매미회였다.

'매미'라는 타이틀은 다분히 자조적인 표현이었다. 여름 내내 맴맴 울기만 하는 매미에 우리 가수들의 처지를 빗댄 것이다. 차 한잔 마시며 공통 관심사에 대해 기탄없이 얘기를 나누곤 했는데,아무래도 방송국의 출연료와 세금 문제가 가장 큰 쟁점이 아니었나 한다.

낙후된 공연장 시설에 대한 불만도 많았다. 당시 공연장의 분장실은 대부분 화장실 근처에 있어 악취가 진동했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매번 노래를 해야 하니 고역이었다. 그래도 참고 있다 보면 후각이 마비돼 대충 견딜 수가 있었지만,이미 들어갈 때 잡친 기분은 만회할 도리가 없었다.

아무튼 매미회의 회장을 맡으며 나는 가수의 처우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대중가수에 대한 사회의 시선이 곱지 않던 때라 누군가 이를 개선하는 데 힘을 써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

70∼71년 한국예술인총연합회(예총) 산하 연예협회의 가수분과위원장을 맡게 된 것은 이런 고민의 결과였다. 물론 매미회가 구심점이 되었다. 변신을 도모해야 한다는 개인적인 결심과 주변의 상황이 맞물려 나는 선뜻 가수 분과위원장을 맡았다. 연예협회 안에 가수·연기·연주·창작·무용 등 5개 분과가 있었다.

당시 가수분과의 회원은 1천명이 넘었다. 수적으로는 대단했지만,국민들에게 알려진 인기인은 손꼽을 정도였다. 이러니 가수들의 처우에 대한 평균치를 내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회원들이 십시일반하는 회비로 단체는 굴러갔으나 늘 빠듯해 내 수입을 보태야 했다.

가수분과에서 가장 총력을 기울인 일은 방송국과의 출연료 교섭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한 형편이지만, 우리 가수들이 생각하는 상업적인 가치와 방송국의 그것이 너무 차이가 났다. 연기자 등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비슷한 대우를 요구했으나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가수들의 소득세를 낮추는 문제도 뜨거운 감자였다. 당시 가수들의 소득 표준율은 65%였다. 수입이 1백원이라면 65원에 대해 소득세를 부과한다는 의미다. 이는 복권 당첨 때와 비슷한 기준으로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의상비 등 이것저것 재투자해야 할 것이 많은 가수들에게 이런 정도의 세율은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이를 좀 낮춰보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결국 목적을 이루지는 못했다. 가수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전반적으로 높아지지 않으면 이른 시일 내에 이를 이루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가수 분과위원장으로 보람도 많았다. 이곳저곳의 심사위원을 맡아 역량있는 신인가수를 발굴한 것은 가장 큰 행복이었다. 피아트 승용차를 상품으로 걸고 한 KBS의 신인 가요제에서 정미조를, 그룹사운드들이 겨룬 '선데이 팝 그룹 경연대회'에서 조용필을 발굴했다. 이때 조용필은 타악 연주자인 김대환과 함께 '김트리오'로 출연해 내 노래 '길 잃은 철새'를 열창했다. TBC 신인 가요제에서는 김연자가 돋보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격변기였던 이때의 내 결정은 잘 한 일이었다. 시대의 변화와 요구를 능동적으로 받아들인 결과였다. 후배들에게 길을 터 주며 뒷선의 후원자로 가요계의 발전에 도움을 주겠다는 나름의 뜻이 원하는 만큼 이루어지지는 못했지만 후회는 없었다.

정리=정재왈 기자 nicola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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