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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시장경제 투철한 지도자를 원한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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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대결에서 자본주의가 승리했으며, 이에 따라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그후 10여년이 지난 지금 세계는 국경없는 무한경쟁이 펼쳐지고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근간으로 시장경제 시스템이 정착되어가고 있다.

각국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규제완화·민영화·개방화·자유화 등의 정책을 통해 정부 간섭을 가능한 한 줄이고 경제활동을 시장의 자율에 맡기는 시스템 구축에 바쁘다.

97년 말의 경제위기는 우리가 이러한 세계화의 큰 물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데서 기인한 것이었다. 그런데도 지난 5년간 우리는 자유시장경제 시스템의 기틀을 마련하지 못하고, 오히려 정부 개입이 강화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노사관계·공정거래정책·사회복지정책·의료 및 교육정책 등에서 반시장적 정책이 시행되고 법치가 실종되면서 결국 개혁의 발목을 잡는 형상이다. 이러한 상황을 혁파하기 위해선 과거 영국병을 치유한 마거릿 대처가 했던 것과 같은 개혁이 필요하다.

대처의 개혁은 개혁의 지적 설계자였던 키스 조셉, 자유주의와 시장경제체제에 대한 대표적 이론가며 노벨상 수상자인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와 밀턴 프리드먼 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들은 대처에게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심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대처는 집권 후 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실천할 수 있었다.

하이에크와 프리드먼을 비롯한 자유주의자들과 시카고학파 경제학자들은 정부 실패가 시장 실패보다 더 심각하다는 것을 입증했으며, 그 결과 대부분의 경제학자는 시장 자율이 정부 개입보다 우월하다는 데 동의하게 됐다.

오늘날 선진 각국에서는 민영화와 규제개혁의 당위성 여부는 더 이상 논쟁거리가 되지 못하고 있다. 오직 어떻게 하면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신속하게 달성할 것인가에 논의의 초점이 맞춰져 있다.

우리나라의 최근 경제위기는 바로 이런 세계적인 변화와 흐름에 우리가 지각생이 돼버린 데 연유하는 것이다.

정보화·지식화 사회에서 시장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데, 정부는 여전히 과거의 제도와 규제의 틀을 고집하고 행정 만능주의적 사고방식을 고수하려 했다.

경제위기 이후에도 정부는 시장 개입을 정당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민간부문과 기업을 개혁의 대상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무한경쟁의 세계시장에서 기업을 돕기보다 경제위기의 주범으로 취급하거나 기회주의적 집단으로 추정해 각종 개입을 강행하는 상황에서 경제발전은 사실상 연목구어와도 같다.

개혁 전도사 키스 조셉은 "우리는 민간 부문을 움직이게 만드는 사람들의 용기를 꺾고 있다. 우리에게는 부와 일자리를 창출하는 기업과 경영자가 필요한데도 우리는 그들을 부당하게 대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80년대 초 영국에서 필요로 했던 개혁과 철학이 20년이 지난 지금 우리 한국에서 절실히 요청되는 것은 실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에게는 시장경제에 대한 믿음과 철학이 투철한 지도자와, 그의 철학을 실천해 갈 작지만 효율적인 정부가 필요하다.

정부는 결과의 평등이 아니라 기회의 평등을 추구해야 하며 경제적 자유를 최대한 확대해 나가는데 정책 목표를 둬야 한다.

개입과 간섭을 최소화하면서 시장의 룰을 수호하는 심판자 역할과 국민의 인간다운 삶을 가능케 하는 정책을 조화롭게 추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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