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문화 최전방 22人 22色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7면

영화 '파이란'의 마지막 장면, 바닷가에서 배우 최민식은 파이란의 편지를 받아든 장면에서 슬픔에 겨워 통곡하다 토하기까지 한다. 물론 토하는 장면은 편집과정에서 삭제됐다.

들국화의 전인권은 죽을 때 자신의 죽음이 인터넷으로 생중계되는 가운데 "나 간다~"라고 말하며 손 흔들고 죽을 계획이라고 농담한다.

부수고 새로 짓지 말고 가능한 고쳐 쓰자는 주의인 건축가 정기용은 "외국은 호텔에서 러브도 하고 회의도 하는데 우리는 호텔에서는 잠만 자고 러브는 딴데 가서 하는 거라 생각하니 기형적인 건물이 나온다"며 천지사방 우후죽순 들어서는 러브호텔들을 한방 먹인다.

월간지 말이 문화인물탐험 코너에서 소개했던 문화인 중 22명을 뽑아 엮은 신간의 빛깔은 다채롭다. 임권택·최민식·전인권·이은미 등 삼척동자도 알만한 스타급들이 등장하는가 하면 영화 촬영감독 김영철·마임이스트 남긍호·역사학자 박노자 등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지만 해당 분야에서 든든하게 뿌리내린 인물들도 포함돼 있다. 만년 조역 단역배우 박용팔에게 따뜻한 자리 하나 내줬다.

빛깔은 다채롭지만 말지 기자들이 '그들에게 말을 걸어' 적지 않은 분량의 지면을 통해 신변 잡사, 예술관, 요즘의 고민, 앞으로의 계획 등을 꼼꼼히 소개해 놓았다. 신간이 단순한 인물 탐험을 넘어서는 이유는 한명 한명 사연을 보탬에 따라 이시대 한국의 문화 지형도를 어림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꼭지마다 시선을 붙잡는 흥행 포인트를 한두가지씩은 가지고 있다.

영화평론가 정성일은 영화판을 휩쓴 '노무현 상임고문을 지지하는 문화예술인의 모임' 서명 바람에 대해 "영화계 내부의 뿌리 깊은 보수-진보 갈등구조가 이상하게 정치에 접목된 결과"라고 분석한다.

'도날드닭'으로 유명한 만화가 이우일은 과거 현재의 아내에게 퇴짜를 맞고는 손목을 긋기도 했고 적성검사 테스트만 받으면 비사회적 인간으로 나온다.

이름으로는 모르지만 얼굴을 보면 알만한 단역배우 박용팔(66)은 36년째 5백여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에로영화에 출연했던 A급 여배우들의 가슴은 모두 '경험'했다고 박용팔은 너스레떤다.

만화 '무대리'의 작가 강주배의 외모는, 만화속 캐릭터에서 닮은 꼴을 찾으라면 영락없는 마순신 부장이다.

영화 '넘버 3'에서 깡패 두목으로 얼굴이 알려진 연극배우 안석환이 연봉 4백만원쯤의 기아선상에서 벗어나게 된 것은 94년부터였다.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을 주름잡는 통기타를 멘 개그맨 윤효상은 군에서 제대했을 때 집(비닐하우스)이 어디론가 이사간 바람에 옆집(역시 비닐하우스) 신세를 져야 했다.

신준봉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